넬리의 은밀한 비법, 앨리스의 '미친 짓'
카르마 브라운의 장편소설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에는 두 아내가 나온다. 한 사람은 1950년대의 주부인 넬리고 다른 사람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앨리스다.
앨리스는 남편 네이트의 주장에 못 이겨 넬리가 살던 교외의 오래된 집으로 삶의 터전을 바꾼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이리저리 살피고 고치던 앨리스는 지하실에서 넬리의 요리 레시피와 편지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두 여자의 역사가 교차되고 때로는 겹쳐진다.
1950년대와 현대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두 여자의 가정생활은 묘하게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물론 1950년대에 여성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현재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삶의 조건은 다르기에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넬리의 남편 리처드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부부간 강간을 저지르고 셔츠에 비서의 립스틱 자국을 묻혀 오지만 앨리스의 남편 네이트는 '꽤 좋은 남자'로 결코 아내를 때리지 않는다. 앨리스는 네이트가 동료와 묘한 구석이 있다고 의심하지만 네이트가 정말 다른 여자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사실, 남들 눈으로 보면 네이트는 정말 좋은 남자다. 그리고 외부인들의 눈에는 넬리의 남편 리처드도 '좋은 남자'였다.
남편의 아내, 남편의 경제력에 기댄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때, 가정생활의 '안사람'으로서의 여성이 느끼는 것들, 임신 문제, 집에 있는 나와 달리 '바깥사람'인 남편의 외도에 대한 감각 등 미묘한 것들이 50년대 넬리의 삶과 현대의 앨리스의 삶에 번갈아 나오며 비슷한 듯 다른, 혹은 다른 듯 비슷한 무늬를 짜간다.
작가인 카르마 브라운은 50년대에 펼쳐지는 넬리의 삶과 그녀의 선택, 여성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은밀한 비법과 이처럼 악이 선명한 넬리의 시대와 달리 미묘한 선과 살아가는 앨리스의 변화, 대응,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릴 결정까지 400여 페이지에 걸쳐 솜씨 있게 짜낸다. 책의 리듬과 호흡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며 읽는 내내 독자의 신경줄이 느슨해지게 두지 않는다.
끝까지 보면 50년대의 넬리는 당대 사회 속 '완벽한 아내'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완벽한 아내'에서 탈출했고 자유를 찾았다. 그녀의 선택을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대의 앨리스도 '완벽한 아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앨리스는 어떤 면에서 넬리보다 더 '완벽한 아내'와 거리가 멀다. 넬리의 선택과 그녀의 은밀한 비법에 동조한 독자들조차 앨리스의 결정과 대응에는 '아니, 네이트가 무슨 죄야? 앨리스가 미친x 아니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대가 요구하는, 혹은 은근히 기대하는 '완벽한 아내'가 되기를 거부하고 뚜렷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압박을 부수는 것에서 두 사람은 비슷하다.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다. 무엇보다 넬리의 서사와 결말은 꽉 닫힌 '완벽한' '클래식'이지만 앨리스의 서사와 결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넬리의 남편 리처드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지만 앨리스의 남편 네이트는 적어도 다음에 부부의 인생을 바꿀 결정을 할 때는 아내가 알아서 자기 의견을 굽혀주거나 자기 생각 없이 네이트만의 단독 결정을 순순히 따르지 않을 거란 걸 알 테니까.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미디어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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