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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미드소마 감독판 보고 주절주절 (2019), (감독판), 아리 애스터 플로렌스 퓨는 연기의 신이다. (2016)도 잘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 영화는 풍광, 의상, 배우, 모든 것이 그림 같은 작품 속의 한 구성 요소로 완벽하게 잘 녹아내린 느낌이었고 미드소마는 플퓨의 연기가 작품을 이끌고 나가는 느낌. 미드소마 보는 내내 플퓨의 표정, 느낌, 공기 등이 영화를 호흡하게 했고 관객이 피부 한 꺼풀 아래 술렁이는 대니의 신경 다발을 감각하게 하는 연기였다. 어떻게 저렇게 하는지 신기하고 놀라울 뿐. 제일 좋았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꽃으로 뒤덮여 인간을 넘어선 꽃의 덩어리가 되어 비척비척 걷는 메이퀸. 인간 '이상'의 존재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고 초월도 적절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딱 맞는 단어를 못 찾겠다. 아무튼..
교황의 고해는 왜 묵음 처리 될 수밖에 없었나-<두 교황> (2019),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유럽과 비유럽, 스메타나와 아바, 피아노와 축구, 전통과 변화. 출생, 취향, 취미, 생각, 성격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한 쪽이 다른 쪽에 굴복하고 흡수되는 형식이 아니라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다른 존재여도 우정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장벽이 아니라 다리). 거기에 믿음과 인간, 죄와 고해, 변화와 신의 목소리까지 많은 것을 건드리는데 작품에서 이 모든 것을 깊이 고민했다기보다는 적당히 매끈하게 상품으로 내놓았다. 실존 인물과 그들의 삶도 그냥 소재 빼먹기 된 것 같고.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가 신부들의 성폭행 고해하는 장면이 마음에 걸린다. 영화는 몇 마디 운만 띄우고 교황의 고해를 묵음 처리한다. 진정 그들을 다루려면 피할 수 없는 장면이었는데 감당 못할 것 같으니까 슬쩍..
내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시대를 살았던 청춘들-<굿바이 마이 러브 NK: 붉은 청춘>(2017), 김소영 1950년대,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 다니던 북한 유학생들이 김일성의 1인 독재를 비판한다. 이념의 이상을 믿고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던 청춘들은 이후 무국적자가 되어 유라시아 대륙을 떠돈다.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낡은 사진, 그들이 남긴 영화, 소설, 편지 등이 나오는 다큐다. 북한의 최고 엘리트로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신념과 우정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기숙사에서 쫓겨나자 숲에 천막을 치고 토론을 하고, 붉은 광장에서 분신자살까지 각오하며 '참된 사람이 되자'는 결의로 다 같이 이름을 '진'으로 바꾸는 게 2020년의 사람에게는 너무 뜨거운 청춘이라 놀라웠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하는 연설도 했던 터라 이들의 망명을 받아주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동지..
영화 보고 싶은데 영화 보기 싫을 때 보는 영화 - <24 프레임>(2017),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그럴 때가 있다. 영화 보고 싶은데 영화 보기 싫을 때. 이야기도 인물도 대사도 어쩐지 버겁게만 느껴질 때. 설날에 딱 그런 느낌이라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을 골랐다. 이야기도, 인물도, 대사도 없고 보면서 명상하는 기분이었다. 카메라 움직임도 없어 그저 한 곳에 고정되어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눈이 편했고. 이번 겨울 눈을 못 봤는데 설원, 말, 소, 사슴, 늑대, 새가 나오는 겨울 영화였고 빗소리, 바람소리, 파도 소리, 새가 날아가는 소리, 늑대와 소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ASMR이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터 브뤼겔의 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새가 날고 눈이 내리고 소와 개가 움직이는 프레임 1로 시작해서 설원에서 서로 희롱하는 두 마리 말을 차창 너머로 보고,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 잠든 소..
올해 첫 영화 -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알랭 레네 2020년 올해 본 첫 영화였다. 옛날 영화 말고도 영화관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사마에게 등등 봐야 하는데 영화관 갈 짬이 안 난다. 기왕 볼 거 최애 극장에서 보고 싶은데 최애 극장은 내 활동반경에서 너무 멀어서... 는 영상의 공간과 시간은 뒤섞이는데 (음성)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인물의 옷차림이 바뀌며 과거와 현재(?) 혹은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고 전경에 앉아있던 인물이 돌연 후경에서 옆문을 가로질러 나타나고 공간의 연속성을 부숴서 바로 다음 컷에서 사람은 그대로인데 공간은 다른 곳이고 그런다. 그런 와중에도 인물이 하던 말은 시간, 공간이 바뀌어도 계속 이어져서 꼭 음성이 미궁 속 아리아드네의 실 같다. 가끔 자막에 구애 받지 않고 영화 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영화가 유..
2019년에 본 '개봉' 영화들 2019년에 나는 무슨 영화를 어떻게 보았나. 2019년에 개봉했지만 오래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뺌 (ex 타이페이 스토리) 내가 19년에 본 옛날 영화도 뺌 최근에 만들어지고 2019년에 관객에게 찾아온 영화 중 내가 본 영화 목록, 감상 기록 로마 / 알폰소 쿠아론 음향 층이 세밀했다. 매번 가던 극장에서 봤는데도 겹겹의 소리 층이 이렇게 체감된 영화는 처음이었다. 콜드워 /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영상미랑 음악, 배우 요아나 쿨릭이 좋았다. 모든 장면이 사진 같았다. 더 페이버릿 / 요르고스 란티모스 란티모스 전작들이 더 좋았다. 캡틴마블 / 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 공짜표 쓰러 보러 감. 인피니티 워, 가오갤 1은 한순간의 쾌락이지만 볼 때의 재미라도 있었는데 이건 재미도 없었다. 마블이 블랙 팬서 만..
행복한 라짜로 보고 주절주절 볼 때는 재미있었다. 전반부까지 그냥 드라마 보듯이 재미있게 봤고 라짜로의 죽음 이후 후반부는 음악이 성당을 떠나 라짜로 일행을 따라오는 성스러운 장면이 좋았다. 그때 나온 음악이 다윗이 밧세바랑 통간한 뒤 속죄하며 지은 시편 51편을 가지고 바흐가 만든 '오, 주 하나님,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BWV 721)라는데 음악 진짜 좋았다. 라짜로의 죽음 자체보다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멀리서 잡아주는 카메라 앵글이 충격이었다. 절벽의 황량한 높이를 한눈에 보여주면서 흰 옷 입은 라짜로가 그 절벽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떨어지는 모습을 피할 수 없이 목도하게 만든다. 사실 라짜로 죽는 거 자체는 이름이 스포라... 막 보고난 직후에도 괜찮은 영화 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볼 때는 별생각 없다가 보고..
김빠진 결혼 생활이 살아나려면 살인 사건이 필요해 - 맨하탄 살인 사건 (1993) 최근 본 영화 중에 제일 웃겼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낄낄거리며 본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같이 본 M이랑 둘 다 완전 취향 저격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미쳤닼ㅋㅋㅋㅋㅋ' 하며 봤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제대로 만나기 전에 그의 스캔들을 먼저 접했고 어쩌다 몇 편 정도 그의 영화를 보긴 했지만 작품을 부러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맨하탄 살인 사건을 보고 아, 우디 앨런이 이래서 팬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의 위기를 겪는 부부를 생생하고 예리하게 그리면서 이웃집에 일어난 살인사건 미스터리가 효과적으로 맞물리고 히치콕이나 흑백 시대 느와르의 그림자도 어른거리게 버무려 놨다. 히치콕 이창 본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봐서 더 겹쳐 보였다. 이웃집을 관찰하며 '어쩌면 저기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