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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ACC 시네마테크 특별강연 - 하버드대 감각민족지연구소(SEL) 소개

The Sensory Ethnography Lab: An Introduction


181003 (수)

강연자 : 헤이든 게스트 (하버드대 필름 아카이브 디렉터)

통역 : <북녘에서 온 노래> 유순미 감독



11월 둘째 주 즈음에 ACC 시네마테크에서 감각민족지 영화를 여덟 편 정도 상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천절에 한 이 강연은 왜 민족지 연구 분야에서 영상을 활용한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왜 현대 다큐에서 이런 작품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ACC에서 11월에 상영하는 영화 중 다섯 편의 클립을 함께 보며 소개하는 자리였다.


고백하자면 강연에 가기 전까지 '민족지'가 뭔지 몰랐다. Ethnography라는 영단어도 생소했다. 민족지와 '감각'이 왜 묶여 있는지, 어떻게 묶여 있는지 이전에 접해본 게 없으니 막연한 상상 밖에 할 수 없었다. 민족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뇌가 꽃밭인 상태에서 강연을 찾아간 건 '현대 다큐의 첨단'이라는 소개 문구 때문이었다. 민족지는 몰라도 다큐는 아니까.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고 극장이나 스트리밍 서비스, tv에서 해주는 영상들을 즐겁게 보지만 뭔가 갈증이 있었다. 이런 매끄러운 상품들 말고 다큐의 다른 세계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못 찾고 못 보는 것 같은 느낌. 거대 자본이 떠먹여주는 것만 별 생각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는 것 같은 느낌.


'현대 다큐의 첨단'이라는 강연 소개 문구가 그런 내 갈증을 정확히 겨냥해서 개천절에 털레털레 ACC로 향했다.


2시에 시작해서 3시 30분까지 예정이었던 강의는 정시에서 5분 뒤에 시작해 4시 13분에 끝났다. 강의는 강연자인 헤이든 게스트가 서두에 말한 대로 '이런 게 있다~ 우리 11월에 이런 영화들 상영하니까 와라~'하는 느낌의 가벼운 소개에 가까웠다. 더 듣고 싶고 더 알고 싶어서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강연을 통해 알게 된 '감각민족지'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이런 걸 보고 싶었다.


강연을 들으며 부분 부분 메모를 했는데 빠진 부분이 많다. 잘못 이해해서 엉뚱하게 적은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기록으로 그 날의 강연을 남겨두고 싶다. 먼저 민족지는 인간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의 분야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인물, 어떤 공간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껴야 한다. 영화는 아주 몰입적인 미디어고 이를 통해 더욱 더 감각적으로 우리가 민족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좀 더 경험적이고 현상학적인 측면에서.


감각민족지는 인류학, 환경학, 시각예술 같은 곳에 계시는 분들이 교차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예술과 인류학, 민족지 등이 협력 활동함으로써 예술을 하는 것이 곧 학문적인 리서치라는 걸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입장은 하버드에서 매우 급진적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시각예술과 인류학은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섯 편의 영화를 조금씩 보여주면서 감각 민족지 연구소(Sensory Ethnography Lab, 이하 SEL)의 역사를 알려주겠다. 이 영화들은 다음달 ACC 상영전에 포함된다. 두 작품은 2006년에 연 SEL 시작 이전의 작업, SEL의 작업을 예고하는 작품들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다큐멘터리의 인기가 많아졌다. 사람들이 다큐를 극장에서 보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본다. 이거에 너무 흥분해서 '이게 다큐의 황금기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기 많은 다큐멘터리를 들여다보면 다른 생각이 든다. 보수적인 트렌드를 따르는 단순화되고 공식화된 영화들. 이런 작품들은 주로 유명한 인물을 다루고 보고나며 '기분 좋은' 것이다.


하나의 좋은 예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다큐 영화는 어린이 TV 프로 출연자였던 미스터 로저스에 대한 <내 이웃이 되지 않겠어요?>라는 작품이다. 물론 미스터 로저스는 중요한 분이었지만 영화 자체는 별로였다. 인기 있는 다큐 영화들은 형식적, 주제적으로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그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토픽들을 다룬다. 스시부터 시작해서 핵폐기물까지.


이런 다큐 영화들은 소위 '말하는 머리(Talking Heads)' 다큐다. 전문가나 증인들이 나와서 얘기하는 게 중심이 되는 샷들. 그들의 말에 영상이 따라 나오는 식.


이런 주류 인기 영화들에 대하여 작지만 아주 강력한 대항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접근을 하며 관례에 도전하는 그런 감독들. 숫자나 참여는 작지만 SEL의 영화감독들은 현대 영화 운동 중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대항 운동의 하나이다.


안정되고 읽기 쉬운 형식에 도전하는 작품들. 이 작품들은 안정된 목소리나 관례적인 시각을 가진 게 아니다. 안정된 주제나 흔한 논쟁을 가지거나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작품들이 아니다. 전통적인 인물 중심 작업이 아니다.


SEL의 커다란 방향 중 하나는 인간중심적인 것에서 떨어져서 동물적, 산업적 세계에 목소리를 주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는 풍경이나 소리 풍경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목소리가 아닌 것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SEL 작품 중 하나를 함께 보겠다. 루시엔 캐스팅-테일러 감독과 베레나 파라벨 감독이 찍은 2012년작 <리바이어던>이다. 처음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은 SEL 작품인데 매사추세츠 해안의 어선 위에서, 그 주변에서 오랜 시간 여러 가지 촬영을 한 작품이다. 현대 어업에 대한 독특한 연구다.


아주 몰입적이고 감각적으로 자극적인 <리바이어던>은 작은 휴대용 카메라들을 많이 사용함으로서 어선의 출렁거리는 움직임을 아주 강렬하게 보여준다. 바다의 움직임, 그러면서 동시에 지루함이나 힘든 노동, 물에 떠있는 공장에 대해 매우 천천히 지나가는 시간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말하는 머리'도 없고 인간의 목소리, 전통적인 대화, 보이스 오버 설명도 없으며 화면에 나타나는 자막도 없다. 그 대신 <리바이어던>은 어선의 비인간적인, 인간 이상의 목소리들을 잡아내는 데 더 관심이 있다. 바다의 소리들, 물고기들.


이 작품은 어촌의 연구로 시작되었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뉴베드포드 마을. 고래 산업의 중심지이며 허먼 멜빌의 자서전적 서사소설 모비딕의 출발점이 된 곳이다. 모비딕의 소제목이 리바이어던이다. 감독들은 실제로 배를 타기 전 동네에서 어촌에 대한 리서치를 했다. 그리고 나서 처음 배를 탔을 때 그 체험은 너무나 폭력적이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그 소리들, 배의 흔들림, 그런 걸 전달하려고 한다.


<리바이어던>의 두 장면을 보여주겠다. 오프닝 씬인 첫 3분, 그리고 나중에 나오는 2분 가량의 장면이다. 음향에 집중을 해주고 그것이 하는 역할에 주의해 달라. 음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번째 장면은 캄캄한 화면에서 소리부터 시작한다. 뭐라고 묘사하기도 어려운, 귀에 거슬리는 아주 이상한 소리들이 들리고 뭔지 짐작도 안 되는 것들이 어둠속에서 나오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저게 밤바다에서 작업 중인 어부들과 배, 어두운 바다라는 걸 알게 된다. 초반에 어둠 속에서 기괴한 소리를 들을 때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가 생각났다. 린치도 자기 영화의 음향을 직접 담당할 정도로 음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영화관에서 이레이저 헤드 처음 볼 때의 느낌이었다.


두 번째 장면은 카메라가 바다 속에 잠겼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를 반복한다. 바다 밑에서 보는 수면이 보이고 수면 위로 나올 때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새들이 보인다. 그러다 배의 정면에서 배가 앞으로 나아가며 잠겼다 뜨는 걸 보여준다. 배가 계속해서 잠겼다 뜨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같이 가라앉는 것 같고 놀이 기구 탈 때 심장이 이상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며 무서워졌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주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슷하다 할 정도의 규모다. 오디오 믹스 음향이 그저 배경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내세워지고 계속해서 관객들이 음향의 존재를 알게 하는 작업이다.


어선의 기계소리, 갈매기, 모든 것이 울부짖는 것 같다. 바다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끊임없이 울부짖는다. <리바이어던>의 음향은 감각적으로 너무 심하게 다가온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미지도 그렇다. 이 영화를 찍으며 파도가 너무 심해서 카메라 여러 대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일반용 고프로 같은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은 카메라를 어부들의 헬멧에 달고, 그물에 담아 바다에 던지기도 하고, 배의 기계에 장착하기도 하고 하며 찍었다. 오프닝 씬은 어부들의 헬멧에 달은 고프로로 찍은 것이다. 바다와 어선과 물고기, 새들은 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언어로 통역될 수 없는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아주 강렬하게 우리가 느낄 수 있고 가깝게 다가오는 영화를 만들어내었다.


이 영화는 2012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상영되자마자 격렬한 토론과 논쟁을 일으켰다. 한 포인트는 움직이는 카메라의 문제였다. 어떤 비평가들은 이 감독들이 예술가로서의 주체 의식을 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냥 쉽게 카메라를 버려서 물속에 잡히는 걸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과 다르다. <리바이어던>은 계속해서 시도하고 실패를 통해 배워나가는 방법으로 열심히 만든 영화다. 이런 비판들은 편집이나 사운드에 들어간 공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리바이어던>은 두려운 바다의 아름다움, 압도적인 자연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이 세계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걸 보여준다. 자연이 우리에게 아주 충격적으로 정신이 날아갈 정도로 감각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것들이 철학적으로 우리가 이 세상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성찰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두 번째 영화인 로버트 가드너 감독의 <축복의 숲>은 도시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힌두 성전인 우파니샤드를 번역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자막도, 대사도 없다. 노래와 기도들, 불, 물, 찰랑이는 소리들이 음악적인 층을 이루게 된다. SEL 감독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1986년 영화다. 첫 5분을 함께 보자.




(개들이 한 개를 집단으로 물어뜯고 고통 받는 개가 울부짖는다. 사람들이 집을 나오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 강변으로 향한다. 어떤 사람은 강에 뛰어들어 물을 가로지르며 수영을 한다.)


<리바이어던>과 <축복의 숲> 다 액체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배와 바다와의 사이의 세계와 도시와 강 사이의 세계. 이 세계들 사이의 흐름이 시적이기도 하고 사실적이기도 하다.


<축복의 숲>은 영혼적이고 심미적이다. 도시와 강 사이의 관계가 흥미롭다. 기도와 노래들, 죽음과 폭력에 우는 동물들의 소리.


다음으로 볼 1963년 작 <죽은 새들>은 <축복의 숲>을 찍은 로버트 가드너의 영화다. 50년대 파푸아뉴기니에서 찍었다. 한 번은 일행이 식인종들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죽은 새들>은 먼 곳의 원주민들과 그들의 전쟁, 의식 같은 문화를 연구한 것이다. 대립하는 두 주민들 사이의 전쟁을 따라가며 찍었다. <죽은 새들>은 가드너 교수의 시적인 감각을 보여주지만 <축복의 숲>과는 다른 감각이다. 여기에는 가드너가 스스로 쓰고 읽은 보이스오버나레이션이 있다.




(어둠 속에서 헐벗은 소년이 새처럼 보이는 짐승을 구워 먹는다. 다음 날 소년의 시체를 카메라가 담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두 영화를 함께 보고 마무리하겠다. 1972년작 프랑스 영화인 도미니크 베네치티 감독의 <줄 삼촌>이다. 베네치티는 시적인 구조를 감싸 안는 감독이다. <줄 삼촌>의 오프닝 5분을 보자. 사운드 텍스처에 집중해 달라. 음향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이 영화의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보아 달라. 음향이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지.


(나이든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 집 밖으로 나온다.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걸어가고, 불을 피우고 작업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영화는 줄 삼촌과 그 부인을 담고 있지만 그들만큼이나 이 영화가 중요하게 다루는 건 불, 연기, 바람, 태양이다. 이 영화는 줄 삼촌과 그 부인을 사계절 동안 따라다닌다. 여름은 물과 삶의 계절이고 겨울은 애도와 죽음의 계절이다. 이 영화의 계절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고 은유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다.


마지막 영화인 <마나카마나>는 스테파니 스프레이와 파초 벨레즈 감독의 2013년작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여신에 대한 절이 있는 산 정상까지 가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어린 소년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등성이로 올라간다. 두리번거림, 얼굴 표정이 고스란히 보인다.)


마치 이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보고 같은 케이블카를 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기차에서 맞은편의 앉게 된 낯선 이를 보는 것처럼.






이후에는 11월에 하는 ACC 시네마테크 상영에 대해 다시 소개하고 강연 내내 옆에서 통역을 한 유순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 뒤 몇 가지 질문을 받다 끝났다. 아직 영화와 민족지의 결합에 의문이 드는 점도 있지만 상영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