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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움베르토 에코 유작 에세이-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

트위터와 리얼리티 프로 등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생각,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을 보다 건설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정신 나간 음모론에 대해 "이 멍청이들아!" 소리 지르지 않고 우아하게 음모론의 말이 안 됨을 찔러주기, 오늘날의 인종주의와 언론, 정치에 대한 예리한 지적, 글에 대한 이야기까지 현시대를 움베르토 에코가 날카로운 통찰력과 특유의 유머로 꿰뚫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정확히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쓴 칼럼 중 일부를 묶은 것인데 베를루스코니나 샤를리 앱도 테러 사건처럼 거론되는 정치인이나 사건이 과거의 일이라도 그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아 여전히 유효하다. 설령 특정 사안에 대해 에코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가 생각을 진행시키고 한 편의 글로 만드는 과정은 접해 볼 만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팬들은 그의 믿을 수 없는 박학다식함만이 아니라 묘한 유머 감각을 사랑하는 것 같은데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에서도 그런 면을 느낄 수 있다.

 

역시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 모음집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나오는 이런 태도가 이 책의 밑바탕에도 깔려있는 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게 반응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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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가장 마음을 찔렀던 문장.

 

국가를 통해서건 혁명을 통해서 건 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린 이 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은 분노를 동반한 항의 운동이다. 그런데 이 운동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알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른다. (p.15~16)

 

유동 사회(Liquid Society)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을 에코가 옮긴 내용이다. 속이 쓰릴 정도로 공감되었다.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열 받고 돌아버릴 것 같고 이게 나라냐, 이게 사회냐, 이게 정치냐, 이게 기업이냐, 이게 언론이냐, 이게 학교냐 기타 등등 성내고 따질 것 투성이인데 분노 표출과 항의 이상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심정은 가득한데 그렇다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거나 뭔가 건설적인 것, 실질적인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8점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