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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호수와 같아, 《호수의 일》, 이현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한 《호수의 일》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페이지로 끝난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은 호수와 같아. '마음은 호수와 같아.' 책을 받았을 때 제목인 호수의 일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주인공의 이름이 호수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알겠다. 마음은 호수와 같다. 얼어붙고, 녹고, 그 와중에 진창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 호정은 마음속에 타인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이 있는 아이다. 평범해 보이는 집안 환경, 무난한 교우 관계, 그럭저럭 3등급인 성적… 별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아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실은 얼어붙은 호수..
작가를 모르는 채로 읽는 책, <호수의 일> 블라인드 가제본 수령 인증 작가님을 모르는 상태로 가제본 받았다 손글씨 편지 두 장이 함께 왔는데 '그대에게' 라고 불러주는 이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그 분이 맞을까?
작별하지 않는다_작별하지 않고, 고통으로 사랑하며 한강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아픔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전작 《소년이 온다》가 떠오른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가 과거의 소년에서 출발하여 폭도, 빨갱이, 불순분자, 때로는 희생자로 갈음되던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거치고 끝내는 현재를 살아가는 소설가 '나'에 이르기까지 '오는 것'이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의 진행 방향은 다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K시의 소설을 다 쓴 뒤에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설가 경하에서 시작한다. 절절 끓는 폭염에 고통 받던 나의 몸, 산책로 단풍의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매몰된 나의 고통은 사고로 손가락이 잘린 친구, 인선의 부름으로 인해 '나'의 바깥으로 향하게 된다. '나'는 인선의 새를 살리기 위해 폭설을 뚫고 제주로 향하고 나와 인선 중 ..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넬리의 은밀한 비법, 앨리스의 '미친 짓' 카르마 브라운의 장편소설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에는 두 아내가 나온다. 한 사람은 1950년대의 주부인 넬리고 다른 사람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앨리스다. 앨리스는 남편 네이트의 주장에 못 이겨 넬리가 살던 교외의 오래된 집으로 삶의 터전을 바꾼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이리저리 살피고 고치던 앨리스는 지하실에서 넬리의 요리 레시피와 편지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두 여자의 역사가 교차되고 때로는 겹쳐진다. 1950년대와 현대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두 여자의 가정생활은 묘하게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물론 1950년대에 여성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현재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삶의 조건은 다르기에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넬리의 남편 리처드는 아내에게 폭력을..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리는 시집, 《개를 위한 노래》 《개를 위한 노래》는 살면서 여러 개들과 함께 했던 시인 메리 올리버가 쓴 개에 대한 시와 한 편의 산문, 그리고 메리 올리버의 털복숭이 친구들의 삽화가 실린 책이다. 시를 읽으면서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볼 때처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강아지들을 '순수한 갈망덩어리'라 표현한 걸 보고 킥킥거렸고 '무언가를 추적하고 나서 보이던 위풍당당한 만족감'이라는 문장에서는 저절로 바깥 냄새를 잔뜩 묻힌 채 어깨를 펴고 돌아온 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개는 당신에게 와서 당신의 집에서 당신과 함께 살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개를 소유하는 건 아니야 라는 문장이나 '개는 확고해, 개는 옳아'라는 문장에서는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눈밭을 뛰어다니는 작은 개(베어)를 묘사한 시 에서 발견..
피버 드림-'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는 것 "이 작품의 천재성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있다."는 뉴요커의 평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는데 운 좋게 창비 서평단이 되어 가제본으로 미리 접했다. 피버 드림은 첫 문장부터 다짜고짜 시작된다. '벌레 같은 거예요.'라고. —벌레 같은 거예요. —무슨 벌레인데? —벌레 같은 거요, 어디에나 다 있는. 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독자는 벌써 흐르고 있는 물에 휘말리듯 작품에 진입하게 된다. 이들이 무슨 관계인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 대체 이건 어떤 이야기인 건지. 이미 시작된 대화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알아내야 한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저절로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읽으면서 어느 시점부터는 병상에서 죽어가며 딸 니나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는 아만..
2/27 국제 북극곰의 날 기념 창비 이벤트 blog.naver.com/changbi_book/222257563174 2/27 국제 북극곰의 날! 하얗고 빛나는 털을 가진 북극곰 '눈보라'가 선물을 드려요! ★ E V E N T ★ 2월 27일, 오늘은 국제 북극곰의 날입니다! ​국제 북극곰의 날을 맞아 하얗고 빛나... blog.naver.com 북극곰 ‘눈보라’의 흰 털과 얼음의 표현 방식이 아름답다 눈보라 - 강경수 지음/창비
움베르토 에코 유작 에세이-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 트위터와 리얼리티 프로 등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생각,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을 보다 건설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정신 나간 음모론에 대해 "이 멍청이들아!" 소리 지르지 않고 우아하게 음모론의 말이 안 됨을 찔러주기, 오늘날의 인종주의와 언론, 정치에 대한 예리한 지적, 글에 대한 이야기까지 현시대를 움베르토 에코가 날카로운 통찰력과 특유의 유머로 꿰뚫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정확히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쓴 칼럼 중 일부를 묶은 것인데 베를루스코니나 샤를리 앱도 테러 사건처럼 거론되는 정치인이나 사건이 과거의 일이라도 그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아 여전히 유효하다. 설령 특정 사안에 대해 에코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가 생각을 진행시키고 한 편의 글로 만드는 과정은 접해 볼 만하다. ..
박솔뫼 신작 소설집-우리의 사람들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묘하게 다가온 건 8편의 단편에 녹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의 존재였다. 솔직히 산책을 하거나 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일 때나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거나 외국의 친구 집에 가거나 낯선 곳의 호텔에 묵거나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물거나 기타 등등의 이런저런 상황에서 나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은 늘 나로 가득 차 있고 나는 항상 나만 생각한다. 가끔 애인과 가족, 친구들을 생각해도 그때 내 머릿속의 그들은 나의 부속물이거나 나에게 딸린(?) 존재라 그들을 생각하는 건 결국 조금 다른 방면에서 나를 생각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의 사람들》의 인물들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사람들'을 생각하는..
7월에 읽은 책들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제니 전에 읽었을 때는 빽빽한 시들이 잘 안 읽혔는데 이번에 다시 잡으니까 전보다 더 집중해서 시를 따라갈 수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이 좋았는데 난 일단 '해변'이라는 장소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음. 해변, 하면 이미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어 버림. 쇼팽 노트 : 가장 순수한 음악 앙드레 지드 쇼팽 연습곡들 각각에 대한 지드의 해석(?)이 좋았다. 지드가 콕 집어 얘기하는 부분 악보가 실려 있어서 눈으로 따라가며 이해하기도 더 좋았고. 곡 들으면서 읽으니까 음악이 한층 더 와 닿는 느낌. 피아니스트들의 리스트적인 쇼팽, 기교적인 쇼팽 연주를 싫어한 지드. 낭만적이나 단순히 흥건한 낭만뿐인 게 아니라 그 낭만이 결국 고전의 견고한 세계로 돌아간다는 쇼팽. 지드의..
20대의 앙드레 지드가 적은 '나의 개성을 만들어준 인물들' 1894년, '메모 쪽지들' 나의 개성을 만들어준 인물들. 성서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파스칼 하이네 투르게네프 쇼펜하우어 미슐레 칼라일 플로베르 에드거 포 바흐 슈만 쇼팽 다빈치 렘브란트 뒤러 (알브레히트) 푸생 샤르댕 내가 가장 자주 접하는 사람들.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 읽고 잡생각 《그리스 로마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세네카, 키케로, 플루타르코스의 글들이 묶인 책으로 읽었다. 좀 두껍긴 한데 여러 권 손댈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제일 재미있었던 건 플루타르코스의 . 거사 전날의 갈등과 대화, 비장한 순간, 새로 등장한 사람들과 사건들, 예상치 못한 반전의 반전까지. 사람들의 대화와 행동이 살아 숨 쉬었다. 하지만 플루타르코스의 은 요즘 세상에 굳이 이런 글까지 번역해서 일반인 대상 책으로 나와야 하나 싶었다. 학술적 의미나 역사적 의미는 있겠지. 그런데 이걸 굳이 2020년의 독자들이 봐야 하나? 시대 감안해서 옛날 글들 빻은 거 잘 보는 편인데도 이건 정말 너무 역해서 이런 얘기라고 뭐 하나 예시로 옮기기도 싫을 정도다. 읽는 내내 요즘 세상의 어지간한 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