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게임으로 시간 보내는 거 자체를 이해 못했다.
그 흔한 핸드폰 게임도 안 하고 살았는데 서사론이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같은 강의에서 게임이 나름대로 비중을 가지고 진지하게 다뤄지는 걸 보며 게임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강의에 언급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스탠리 패러블, 에디스 핀치의 유산 같은 게임을 유튜브 실황으로 찾아보고 호기심이 생겨 동생1의 스팀 계정에 있는 스팀 게임도 조금 건드려 봤다.
남이 하는 걸 보는 게 아니라 직접 해보니까 서사고 뭐고 그냥 무조건 재미에 눈이 돌아가더라.
세상에 이런 재미가 있다니 놀랄 정도였다. 취향에만 맞으면 게임은 정말 너무, 너무 재밌다.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였다.
대충 몇 개 해보니까 내 게임 취향도 알게 되었다.
첫째, 반드시 여캐로 플레이 할 수 있어야 함.
남캐 싫다. 완전 싫음. 남캐 안 해.
동생2가 위쳐3 추천해줘서 조금 해봤는데 남캐로만 할 수 있어서 별로 정이 안 갔다.
물론 게롤트는 잘 생겼다.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다. 그런데 내가 걔를 플레이 하는 건 별로다.
내가 왜 이 덩치 큰 남자여야만 하지? 이 생각부터 드니까 이후의 게임이 전부 그냥 납득이 안 되었다.
무조건 여캐로 플레이 가능해야 하고 여기에 커마까지 가능하면 더 좋다.
둘째, 자연환경이 아름다워야 함.
나무랑 꽃 같은 식물이 많고 하늘은 맑고 파래야 한다.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고 관광하는 기분 드는 예쁜 환경이 좋다.
인류가 대충 멸망했다거나 배경이 우주라거나 폐쇄된 건물 같은 건 싫다.
동생2가 폴아웃하는 거 옆에서 조금 봤는데 커다란 바퀴벌레 나오고 환경 칙칙해서 구경할 기분도 안 들었다.
자연친화적이고 아름답고 화사한 분위기가 좋다.
또 밝고 예쁜 자연환경이어도 도트 게임은 싫다. 무조건 3D.
셋째, 꼭 오픈 월드여야 함.
이리저리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게 좋다.
오픈월드가 아닌 게임은 너무 답답하다.
넷째, 다른 유저 없이 나만 솔로 플레이 하는 게임이어야 함.
npc가 편하다. 솔직히 진짜 인간은 이래저래 너무 피곤하잖아.
유저 만나는 게임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나랑은 안 맞을 것 같다.
나 혼자 이것저것 내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솔로 게임이 좋다.
다섯째, 전투가 주 컨텐츠가 아닌 rpg(?)가 좋다.
총 쏘는 게임 같은 건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재미도 모르겠고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다.
rpg 중에서도 전투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게 좋다.
동생2가 몬헌 해보라 해서 해봤는데 공룡이랑 계속 싸워야 하고 싸우는 방법도 어려워서 조금 하다 관뒀다.
고양이랑 비슷한 아이루는 되게 귀여웠는데 전투가 주된 컨텐츠에 전투 자체가 나한테는 어렵기까지 하니까 더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위쳐3 전투도 나한테는 좀 어려웠다.
여섯째, 플레이하면서 내 행동에 따라 npc들이랑 친밀도 변하는 게 좋다.
그 게임 속 일원인 것처럼 여러 npc들이랑 나름의 관계가 형성되는 게 재밌다.
사실상 내 게임 취향은 스카이림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위쳐3 너무 어렵다 하니까 동생2가 스카이림을 해보라 해서 해봤는데 진짜 이거 하느라 인생을 갈아 넣었다.
밤에 잘 때는 내일 스카이림 켜면 뭐 할지 머릿속으로 플레이 순서 짰고 아침에는 오로지 일찍 일어나서 게임할 생각으로 번쩍 눈이 떠졌다. 게임 하느라 먹는 것도 귀찮을 정도였다.
스카이림 소개하면서 동생2가 자기는 이걸 170시간 했다고 인생 게임이라 말했는데 그때 내색은 안 했지만 게임을 170시간이나 했다는 것에 너무 놀랐다. 속으로 얘가 내 생각보다 게임 중독자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스카이림을 해보니까...
170시간은 무슨, 400시간을 찍었다.
진짜 눈이 돌아갔다.
세상에 이런 게 있구나, 게임하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처음 하는 경험에 현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인생을 바쳐 스카이림하다가 질린 뒤에는 한 동안 다시 게임 자체를 하지 않았는데 엊그제부터 마이 타임 앳 포샤를 시작했다.
스카이림 정도는 아니지만 이것도 취향에 맞는다.
아기자기하게 물건 만들어서 하나씩 미션 수행하고 마을 사람들이랑 친목 다지고 나무 열매나 허브 같은 거 주워서 팔고 집안 꾸미고 가게 넓혀나가는 게 재밌다.
동생들은 돈 스타브, 스타듀밸리도 나랑 맞을 것 같다는데 돈 스타브는 캐릭터 디자인이나 배경 환경이 내 취향이 아닌 것 같고 스타듀밸리는 도트가 싫어서 할 생각이 안 든다.
스카이림이랑 비슷하다 해서 드래곤 에이지를 해보고 싶은데 몬헌은 나한테 전투가 너무 어려워서 하다가 금방 그만 둘 거라고 예언했던 동생1이 드래곤 에이지 전투 방식은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해서 살 엄두가 안 난다.
동물의 숲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건 컴퓨터로는 못하는 게임이라 해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당분간은 포샤나 해야지.
그리고 스카이림처럼 내 현생 버려가며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오히려 살면서 이런 저런 게임 많이 해본 동생들보다 게임을 안 해본 내가 더 게임 중독자 되기 쉬운 것 같다. 어렸을 때 게임 면역력을 좀 키워놨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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