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바다를 보는 엄마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장을 보러 가면 아이스크림을 꼭 사야 한다. 안 사오면 엄마가 아쉬워한다.
엄마는 꿀꽈배기를 좋아한다.
엄마는 검은 쌀을 너무 많이 넣어서 밥 색깔이 새까맣게 되는 걸 싫어한다.
엄마는 샌드위치에 햄 같은 가공육을 넣는 걸 싫어한다.
엄마는 도시락을 동물 모양, 캐릭터 모양 등 생명체가 있는 모양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먹을 때 너무 잔인하잖아." 엄마가 말한다.
엄마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좋아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한다)
엄마는 식물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다육이는 취향이 아니라고 했다. 너무 볼품없다고. 보다 더 풍성한 식물들이 좋다고 한다.
엄마는 과일을 마음껏 먹고 싶어서 돈 번다고 했다.
엄마가 아빠랑 처음으로 같이 본 영화는 <브로드캐스트 뉴스>였다. 나는 이걸 매번 <캐스트 어웨이>로 잘못 기억한다.
엄마는 아빠랑 영화 코드가 맞아서 사귀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아빠랑 데이트하던 시절 엄마는 아빠가 뚱뚱하다는 걸 전혀 몰랐다고 했다. 큰 이모가 아빠를 보고 "얘, 저 사람은 너무 크지 않니?" 했을 때도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했다고. 그러다 어느 날 카페에서 만났을 때 늦게 온 아빠가 들어오면서 카페 문에 가득 차는 걸 보고 그제야 '아, 저 사람이 덩치가 좀 있구나' 했다고 한다.
엄마는 우리 삼남매를 낳을 때마다 5kg씩 쪘다.
남동생은 우량아였는데 병원 사람들은 조그맣고 마른 엄마가 이렇게 큰 아이를 낳은 것에 놀랐다. "남편 분이 되게 크신가 봐요." 갓 태어난 동생을 보고 간호사가 한 말을 엄마는 기억한다.
엄마는 아빠 이전에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얻었는데 엄마는 그 남자보다 자식을 한 명 더 많이 낳은 걸 '이겼다'고 생각한다. "3:2잖아."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성인이 된 뒤에야 처음 해주었다)
우리가 아직 어렸을 때,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인지 중학교 동창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창인 아저씨가 엄마에게 한동안 메일을 보냈다.(나는 전혀 몰랐었다!) 스스로의 결백함을 지키는 방법으로 엄마는 막내 동생과 함께 그 메일을 읽었다고 한다.
한편 어렸던 동생은 그 메일을 보면서 '이 아저씨 왜 우리 엄마한테 치근덕거리지?' 생각하며 엄마가 떠날까봐 걱정 했다고 한다. (막내 동생이 다 커서 이 얘기를 하며 그때 겁났다는 얘기를 하자 엄마는 깔깔 웃었다.)
엄마는 스스로를 '타고난 싸움꾼'이라고 말한다. 먼저 싸움을 걸지는 않지만 누가 공격해오면 절대 지는 싸움은 안 한다고.
학창 시절 엄마의 꿈은 작가였다.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작은 딸, 꼭 작가가 되어라"라는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엄마는 아직도 그 꿈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공부를 잘했지만 수학은 어려워했다.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갔는데 전학 간 학교가 원래 다니던 학교보다 수학 진도가 빨랐다고 한다. 그렇게 뒤쳐진 후 다시는 수학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고. (그래서 내가 수학을 못하는 걸 보고 엄마는 '음, 나를 닮았군' 하며 좀 더 너그러워 질 수 있었다.)
엄마는 영화 <트로이>를 보다가 주인공인 아킬레우스 브래드 피트보다는 헥트로 역 에릭 바나가 더 취향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 동의했다. 내 막내 여동생도.)
엄마는 눈이 커다란 여자를 좋아해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눈이에요."라고 고백한다. 학창시절 엄마의 앨범을 보면 올리비아 핫세,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진이 붙어 있다.
엄마는 고등학교 때 미화 부장이었다.
엄마는 고등학교 때 실업 과목 선생님을 짝사랑했다. 내게 사진을 보여줬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한 분이였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선생님을 '케네디'라 불렀다고 한다.
엄마는 JTBC 예능 <히든싱어>를 즐겨 보는데 가수들을 잘 몰라도 누가 원조 가수인지 노래를 듣고 정확히 맞춘다.
엄마는 추억 속의 가수들이 나오는 <슈가맨>도 종종 보는데 90년대 가요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때는 우리 삼남매를 키우느라 너무 바빠 유행하는 노래 한 번 듣지 못했다고 한다.
+
나는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는데도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 엄마가 되기 이전의 삶과 '내 엄마가 아닌' 엄마의 모습을 알지 못하며 솔직히 크게 관심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거 하나라도 관심 가지고 엄마에 대해 계속 적어가야지.
++
엄마는 참치캔은 무조건 동원 참치만 산다.
엄마는 바밤바는 너무 달아서 싫어한다.
엄마는 감자보다 고구마를 더 좋아한다.
엄마는 다른 지역에 다녀오면 호두과자를 사온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어디 갔다 오시면 호두과자를 사오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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