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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리틀 포레스트 (2018) - 김태리의 농촌 생활 브이로그?


스포 있음


리틀 포레스트는 엄청난 야망을 품고 있거나 다루고 있는 소재가 거대해서 보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거나 특별한 각오를 하고 보러 가야 하는 영화는 아니다. 제목 그대로 '작은 숲'처럼 편안하게 관객의 마음을 감싸주고 다정하게 맞아주는 영화였다. 관객의 멱살을 잡아채며 눈 크게 뜨고 보라고 고함을 지르는 영화가 아니라 보기 편했다.


소박하고 잔잔하지만 그렇다고 메시지가 없는 건 아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세상에 치이고, 허기지고, 탈진해서 쓰러진 청춘들에게 정갈하고 맛깔나는 밥상과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선사하며 다감하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영화의 주인공 혜원은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편의점 밥으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금방 올라갈 것이고 며칠만 묵을 거라 말하던 그녀는 어느새 1년 사계절을 꼬박 고향에서 보내며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계절에 맞는 재료들로 음식을 해 먹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어지러운 세상의 속도에 치여 찬찬히 생각해 볼 틈이 없었던 자신의 삶을 새삼 마주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아무리 진돗개 '오구'가 함께 있고 근처에 고모와 친한 친구들이 산다지만 젊은 여자 혼자 시골집에서 사는 설정이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밤에 썩 보안이 좋아 보이지도 않는 집에서 혼자 잘 때는 영화 속에서 혜원이 밤이면 마을에 내려온다는 멧돼지와 사람이 비명 지르는 것 같은 고라니 소리를 두려워하는 동안 멧돼지나 고라니가 아닌 사람을 두려워하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니고 진짜(?) 농촌 생활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영화도 아니다. 시험에 떨어진 취업 준비생, 먹어도 헛헛한 편의점 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춘, 욕 나오는 상사에게 치이는 젊은 세대를 보여주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목표는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내 고발하고 관객들에게 공감과 고통의 눈물을 자아내는 게 아니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그런 아픔에 공감하는 이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예쁜 영상으로 '힐링' 할 수 있게 다친 마음을 보듬어주는 데 집중한다.


그런 목적 때문에 혜원의 농촌 생활은 참 아름답고 예쁘다. 물론 젊은 세대라면 질색할 동네 어르신들의 "여기 좀 앉아 봐라", "선생님 된다더니 요즘 뭐 하냐", "남자친구는 있냐" 등의 질문 공세도 나오고 넉넉지 않은 통장 잔고를 걱정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그런 모습들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측면을 아예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구색을 맞추듯 살짝 끼워 넣은 정도다. 벌레도 송충이나 통통하게 살찐 애벌레 정도나 나오지 다리 많은 지네나 커다란 바퀴벌레, 위협적인 쥐 같은 건 나오지 않는 식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접하는 것처럼 구질구질한 '생활'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삶의 어떤 선택된 장면들, 필터를 거친 일상을 보여준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공들인 영상과 중간 중간 음악을 쓰는 방법도 그렇고 보다 보면 유튜브에서 농촌 생활 브이로그 같은 걸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 잡지를 보는 것처럼, 남의 sns를 보는 것처럼 지극히 세속적인 눈으로 영화를 보게 되기도 했다. 저 옷은 어디 걸까, 매의 눈으로 배우와 옷의 조화를 보게 되고 김태리의 숱 많은 긴 머리에 감탄하고 식기와 유리병이 어디 제품일지 브랜드가 궁금하고 저런 나무 커트러리가 나도 갖고 싶고, 인테리어를 어떻게 해놨는지, 플레이팅을 어떻게 했는지 같은 걸 눈여겨보게 된다.


농촌 생활 브이로그 같은 영화라고 보면 새삼 이 영화에서 김태리라는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어떤 중심 사건이나 굵직한 스토리 라인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김태리가 밥 차려 먹고 김태리가 농촌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나열이다. 정말 유튜브 브이로그 같다.


브이로그 같은 건 비슷비슷한 삶의 조건이라도(20대, 여성, 농촌 생활) 브이로그에 나오는 사람이 궁금해지고 매력이 있어야 계속 보게 된다. 어떤 일상이냐 만큼 '누구'의 일상이냐가 중요하다. 더 알고 싶고 계속 보게 만드는 사람, 배우 김태리는 이 조건을 충족시킨다. 그녀는 씩씩하고 예쁘고 건강하다. 왠지 모르게 주는 것 없어도 호감이 간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은 배우, 참 예쁜 배우. 이때 '예쁘다'는 단순히 겉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배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분위기 같은 것을 말하고 싶다.


김태리는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잘 맞고 영화도 김태리의 장점이 무엇인지 잘 알아서 그 매력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고 일본에서 먼저 영화화가 되었다. 일본 영화는 보지 못했고 원작 만화는 한국판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본 뒤에 1권만 보았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외국의 만화보다는 한국 영화로 볼 때 더 피부에 감기는 느낌이었다. 언뜻 듣기로는 일본판 영화는 한국판보다는 친구들의 비중이 적고 주인공의 음식과 일상에 보다 더 충실하다고 한다.


왜 한국판은 일본판보다 친구들의 존재감이 더 많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여성 주인공 한 명으로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를 채우는 게 여러모로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주인공 혜원이를 혼자 두지 않으려는 따뜻한 마음씨의 발로였으면 좋겠다. 임순례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해 보고 '온기가 있는 것은 위안이 된다'는 영화의 대사를 곱씹어 보면 혜원이의 주변에 그렇게 온기가 있는 존재를 두고 그들이 혜원이와 함께 투닥거리고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순간을 늘린 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친구들의 비중은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그들의 존재감을 만들었는지는 다른 문제다.


영화 속에서 세 친구들이 미묘한 사랑의 작대기를 주고받는 것 같은 설정이 꼭 필요했을까? 물론 리틀 포레스트가 본격적인 시골 '연애' 영화는 아니고 로맨스의 기미를 살짝 양념 친 정도지만 그 양념이 이 영화의 매력을 발산하는데 도움이 되는 양념이었는지는 살짝 의심이 간다.


내가 혜원이, 재하, 은숙이 세 친구들의 케미를 좋아한 건 그들의 관계가 요즘 세상에서는 얻기 어려운 '상대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게 부담이지 않은 존재'여서였다. 사실 내 과거, 내 찌질하고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다 기억하고 감추고 싶은 내 속까지 빤히 들여다보는 상대가 적이 아니라 내 아군, 내 소중한 친구라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세 친구들이 여름밤 개울에 앉아 친구가 아버지 몰래 훔쳐 온 인삼주를 나눠먹고 추운 겨울날 바깥의 찬 공기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자아가 비대해지기 이전의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우리 어머니의 음식 맛에 대해 나만큼이나 잘 기억하고 통장 잔고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얘기하며 너 사채만큼은 쓰지 마라, 차라리 언니한테 와, 하는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좋았다.


그래서 그들이 미묘하게 썸을 타며 그 셋 사이에 연애 감정이 섞이는 게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다. 특히 혜원이와 은숙이가 재하를 두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약속하는 장면은 이게 뭘 위한 장면인가 갸우뚱하게 된다. 감독이 자기 입으로 이 영화의 주 타겟이라고 밝힌 '2, 30대 여성 관객'들에게 내 제일 친한 친구와 남자 하나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 자체가 긍정적으로 어필되는 장면일까?


물론 영화는 은숙이와 혜원이 재하를 두고 나누는 다짐을 다소 만화적인 뉘앙스로 가볍게 터치하고 사랑의 삼각관계를 보는 이에게 부담이 될 정도로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묻게 된다. 왜 이 영화에서 저들을 묘한 삼각관계로 만들어야만 했을까?


젊은 남녀를 작품 속에서 다룰 때 그들 사이에 연애 얘기를 끼워주면 어느 정도 만드는 게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연애 감정을 다루는 일종의 공식과 관성이 있고 거기에 기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리틀 포레스트의 세 친구들의 관계를 묘한 썸을 집어넣지 않아도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방면이 이 영화를 더 '리틀 포레스트'답게 만들어 주지는 않았을까 자꾸 아쉬움이 든다.


연애 감정에 이어서 남자 캐릭터를 다루는 것도 살짝 아쉬웠다. 가장 친한 동성 친구인 혜원과 은숙이 소꿉친구 재하 하나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그 상황에 재하의 구여친까지 등장하는 설정을 보면서 왜 재하 캐릭터에게 꼭 저런 설정을 넣어야만 했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온갖 여자들이 재하한테 몰리는 설정이 리틀 포레스트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거나 그렇다고 재하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 것 같지는 않다.


재하 캐릭터 자체를 위한 섬세한 영화적 장면이 아니라 다분히 설정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은 여자들이 몰리는 마성의 남자 같은 재하, 일정한 공식에 기반을 둔 여자 주인공과 썸 타는 관계로서의 재하보다는 그냥 재하 자체만으로 매력이 있는, 스스럼없이 고민을 나누고 때로는 피붙이 같기도 한 다정하고 의지가 되기도 하는 존재인 재하를 더 영화적으로 영리하고 관객들에게 호감을 주는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의 재하는 '여자 주인공의 짝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남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캐릭터가 조금 평면적이 되고 손해를 본 것 같다. 여자 주인공에게 왜 꼭 이성애 연애 상대가 될 것 같은 남자가 필요한지도 의문이고.


문소리 배우는 굉장히 우아했고 진기주 배우는 참 귀엽고 발랄했다. 아픈 곳을 기가 막히게 콕 찌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혜원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장재희 배우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린 혜원과 엄마의 장면이 없었다면 김태리가 연기하는 성인 혜원이 갖고 있는 엄마에 대한 감정이 자칫하면 허공에 붕 떠버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재희 배우가 어린 혜원을 참 잘 표현해줘서 혜원과 엄마의 관계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 (2018)

감독 : 임순례

출연 :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문소리 장재희

촬영 : 이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