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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앤 카슨, 소크라테스의 편지

Jacques Louis David, The Death of Socrates (1787)

 

친애하는 크리톤, 오늘 오지 마. 네가 오면 난 자는 척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왜 내가 아내를 집으로 보냈는지 설명해야 할 거야. 눈물은 곡하는 사람들의 것이지, 그렇지 않아? 우리 집 꼬마 아가씨는 더 분별력 있어. 그 애는 여기 와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어. 여긴 정말 축축하네요. 아빠는 모자가 필요해요. 그리고 30분 후에 뜨개질한 모자를 가지고 돌아오더군. 네가 지난겨울에 내게 준 것 말이야. 난 현실적인 사람이 좋아. 내 처형은 사흘 뒤로 정해졌어.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내게 독배를 보내준다면 고맙겠지만 말이야. 나도 그게 무척 비싸다는 건 알아. 거기다 관세도 있고 뇌물도 바쳐야겠지. -왜 그 독초들은 그냥 이 나라에서 자라주지 않는 걸까?- 아무튼, 다른 방식보다는 독배가 나을 거야. 목에 족쇄가 채워진 채 못 박히는 소위 피 흘리지 않는 십자가형보다는 말이야. 누구도 다른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죽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아. 친애하는 크리톤, 넌 몇 년 동안 악몽을 꿀 걸. 그리고 난 독배로 그냥 정신을 잃어 간다는 게 조금 마음에 들어. 내 아내에 따르면 난 지난 몇 년 동안 정신을 놓고 있었지. -그게 그녀를 견뎌낼 유일한 방법이었어- 이런, 방금 말은 심했네. 나는 지난 세월 그녀에게 냉정했지. 내 가정에서 말이야. 우습지. 자기 최악의 모습이 가정에서 나타난다는 게. 내 삶은 사내들의 것이었어. 자네도 알잖아! 남자들, 그리고 술. 난 연설자야. 난 말을 믿었지. -규제를 버리시오! 바구니에 갇힌 모든 고양이들을 풀어놓으시오!- 대부분은 그냥 상식이었어. 내가 사람들을 겁줬나? 벽 같은 건 없다고 말해서? 당신과 당신의 어두운 마음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서? 설령 무언가 있어도, 당신은 그것에 기도할 수 없고, 그것에 대한 시를 쓸 수 없고, 그것의 사랑을 위해 경쟁할 수 없다고 해서? 그건 약탈과 끔찍한 계획과 무(無)의 냄새가 나. 끔찍한 계획에 대해 말하지, 오늘 플라톤도 못 오게 해. 걔는 내가 옛날에 했던 말을 늘어놓기 시작할 거야. 그걸 듣고 있으면 진절머리가 나. 아니면 걔는 내게 법에 대해 가르치려 할 거야. 당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건 법이 아닙니다. 법률가가 문제입니다. 걔가 말하면 나도 말하겠지. 그래, 그런 구분이 맘에 든다면. 그리고 걔는 계속 말하겠지. 초월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혹은 신체 단련에 대해, 또 누가 알겠어, 뭐든 계속하겠지, 말하고 또 말하고. 내가 우리의 친애하는 플라톤에게 말할 때마다 나는 영원의 공포에 빠지게 돼. 넌 내가 뭘 말하는지 알 거야. 아니면 모르거나. 넌 거칠고 독특한 소년이고 네 머리는 논쟁으로 가득 찼지. 내가 언제 논쟁들에 신경 안 쓴 적이 있었어? 아마도 그건 여기서 콧노래나 다름없을 거야. 이 노랫소리, 들려? 벽 속에서 나는 건가 아니면 내 귓속에서? 대개는 사람 목소리 같지만 뜻은 없어. 그건 다른 소리들을 막아주지. 옛날 일 기억나? 그들이 죄수를 고문하기 위해 밤새 이기 팝을 틀어놓던 때를? 그때는 전쟁이 계속되던 때였지. 그 전쟁이란 짐승은 지금 잠깐 졸고 있어. 어쨌든, 네가 여기 있어도 난 아마 네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야.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사랑하는 크리톤, 만약 네가 온다면, 또 다른 뜨개질한 모자를 가져다줄 수 있어? 내 것은 경비병에게 주었어. 여긴 정말 축축한 곳이야. 안부를 전하며, 소크라테스로부터.

 

 


 

2016년, <Inside Prisons and Writers in Reading Prison> 프로젝트에서 앤 카슨이 발표한 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 때문에 수감 생활을 했던 레딩 감옥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였다. 와일드가 레딩에서 연인 보우지에게 쓴 편지 심연으로부터를 랄프 파인즈, 패티 스미스, 벤 위쇼 등이 낭독하기도 하고 현대 작가들이 오스카처럼 '강제로 격리된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주제로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앤 카슨은 유죄 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친구 크리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했다. 이 소크라테스에게서는 오스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