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이 14세에서 30세 사이에 적은 일기에서 음악에 관한 부분만 발췌 (1947~1963)
1948년 (15세)
9월 1일
오후 내내 지드를 읽으며 부슈(Fritz Busch)가 (글리데번 음악제에서) 녹음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들었다. 몇몇 아리아들(영혼을 일깨우는 그 달콤함이란!)은 여러 번 반복해 들었다.('저 배은망덕한 놈이 나를 속이고'와 '저리 가, 잔학한 자여, 저리 가') 이런 노래들을 항상 들을 수 있다면 진정 단호하고 평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12월 25일
지금 이 순간, 나는 이제껏 들어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음악에 흠뻑 빠져 있다. <세트라-소리아Cetra-Soria> 레이블에서 발매하고 마리오 살레르노Mario Salerno가 연주한 비발디 B단조 피(아노) 포(르테) 협주곡 말이다.
음악은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놀라우면서도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완벽하고 순수한- 가장 관능적인 예술이다. 나는 몸으로 음악을 듣고, 내 몸은 이 음악에 구현된 열정과 비애에 반응해 아픔을 느낀다. 물리적인 '나'는 전체 멜로디의 세계가 갑자기 반짝이며 빛났다가 1악장 후반부에 이르러 폭포처럼 떨어질 때 참을 수 없는 고통-그러고 나서는 희미한 초조감-을 느낀다. 2악장의 갈망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순간 내 살과 뼈는 조금씩 죽어 간다.
1949년 (16세)
6월 4일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스크랴빈의 서곡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
[바흐의] 미사곡 B단조
음악과의 섹스란! 너무나 지적이다!
8월 5일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 1악장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1악장
모차르트 협주 교향곡 2악장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작품 70a 2악장
9월 27일
……베토벤 사중주 vs. 유클리드 정리
1957년 (24세)
1월 XX일
유년기의 비망록 중
1. 첫 번째 버전
[라벨의]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Alborada del Grazioso>. [할리우드]
피터와 바닥에 누워 WQXR(미국 공영 클래식 라디오)에서 나오는 하이든 사중주를 들음.
구노Charles Gounod의 <로미오와 줄리엣>. 로지와 함께.
안내를 맡음. 발코니에서 루빈스타인을 들음.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세계 초연(라디오방송)을 들음.
밸리 프렌즈 실내악. 프랑크의 A 장조 소나타(데보라 그린의 피아노 연주, [그녀의] 남편이 바이올린 연주).
2. 두 번째 버전
앨리스 로츨린에게 차이콥스키가 베토벤보다 낫다고 말함.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을 라디오에서 들음.
X월 XX일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일부는 마터Mahter라는 터키 군악대가 연주하는 전통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이 전통음악으로 인해 현대 서구 음악에 심벌즈와 드럼이 도입됐다.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7 국제 북극곰의 날 기념 창비 이벤트 (0) | 2021.03.03 |
---|---|
20대의 앙드레 지드가 적은 '나의 개성을 만들어준 인물들' (0) | 2020.07.07 |
앤 카슨, 소크라테스의 편지 (0) | 2019.09.12 |
샬롯 갱스부르가 좋아하는 음악 (0) | 2018.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