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책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 '너 자신을 알라'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미셸 투르니에에게는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계절 따라 변하는 정원의 모습, 친구들과의 일화 등을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외면일기》는 그의 이런 토막글을 모아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로 나눠놓은 책이다.

만약 모바일 화면으로 본다면 한 화면 안에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담길 만큼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덕지덕지 물감 칠이 된 유화보다는 간소한 스케치에 가깝다.


연결되지 않는 파편들이 쭉 나열되어 있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때로는 아슬아슬하기도 한 미셸 투르니에의 유머 감각이 곳곳에서 반짝이고 그의 다른 작품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창작의 씨앗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읽다가 미소를 짓게 되기도 하고 와, 이런 구절이! 감탄하며 밑줄을 그을 때도 적지 않게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활 속에서 미셸 투르니에의 눈과 귀에 담긴 것들, 주변 지인들과 나눈 잡담 등을 쭉 읽다 보면 남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책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생활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아, 이런 것까지 알고 싶지는 않은데 싶은 구절도 있다.


내게 《외면일기》는 책에 담긴 내용 자체보다는 책이 지향하는 태도가 더 매력적인 책이었다.


미셸 투르니에는 머리말에서 이 기록을 '외면일기'라고 붙인 까닭에 대해 말한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것은 '내면의 일기journal intime'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외면일기journal extime'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보기로 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보다는 외부를 향한 시선, 세상에 대한 발견에 관심이 많다.


"밖에서 마주친 사물들, 동물들, 사람들이 내게는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보다 항상 더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말이 내게는 항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명령으로만 느껴졌다. 나는 나의 창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설 때 비로소 영감을 얻는다. 현실은 나의 상상력의 밑천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어서 끊임없이 내게 경이와 찬미를 자아낸다."


물론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건 아니다. 외면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책에는 미셸 투르니에의 내면도 담겨 있다. 그러나 미셸 투르니에가 굳이 '외면일기journal extime'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며 환기시킬 만큼 밖을 향한 시선, 외부의 세상을 접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갈수록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고 폐쇄적이고 유아적으로 오로지 나만을 끌어안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에 대한 생각은 때마침 좋은 자극이 되었다.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 앞으로 나도 하루에 한 줄이라도 외면 일기를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독학과 정규교육에 대한 글도 와 닿는 점이 많았다. 독학자가 무조건 정규교육을 받은 자에 비해 부족하다기보다는 자신의 관심사,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자기 바깥에 있는 것들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양을 기르는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기는 독서를 매우 좋아해서 양 우리에 책을 가득 채워놓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독학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독학한 사람과 정규적인 공부를 한 사람과의 차이를 그는 이렇게 설정한다. 독학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배웠다. 그의 교양은 자기 자신의 인격의 한계 내로 제한되어 있다. 반대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골고루 다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장점은 엄청난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보기에 자신으로서는 별 흥미도 없는 지식들을, 나아가서는 싫어하는 지식들 또한 습득해야 한다는 것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마음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놀라울 만큼 적절한 것이다. 나는 중학교에 다닐 때 내가 싫어하는 수학과 물리를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서 게을리한 것을 쓰디쓰게 후회한다. 그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내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유럽 제일 방송>에서 정치·경제 평론가들이나 기자들 속에 섞여서 근무했던 시절(1954~1958)은 어디로 보나 내게 어울리지 않았지만, 결국 나에게 큰 보탬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가장 소질이 없는 스포츠가 가장 위생적인 의미에서 도움이 된다."



외면일기 (Jurnal Extime)

미셸 투르니에

번역 : 김화영

출판 :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