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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불의 강, 오정희 - 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숨이 막힌다. 오정희의 첫 번째 소설집 불의 강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서서히 목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면서 왠지 모르게 침 한 번 크게 삼키는 것도 주저하게 만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서사가 엄청나게 스펙터클하다거나 뭔가 스릴 넘치는 장르적인 리듬이 있는 건 아니다. 불의 강에 실린 열두 편의 단편은 언뜻 보면 평화롭고 나른할 정도로 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장면들을 예민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샅샅이 속살을 파헤쳐 생살에 바늘을 꽂는 것 같은 문장으로 백지에 새긴다. 읽다 보면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야릇한 기운에 둘러싸이는 것 같다.


열두 편의 단편을 읽으며 문득 깨달은 것은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부분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었다는 것이었다.


불의 강의 부부는 아이가 죽었고 안개의 둑의 남자는 네 살배기 어린 동생이 죽었다. 목련초의 여자는 무당인 어머니의 죽음을 보았고, 봄날과 번제의 여자들은 아이를 낙태했다. 관계의 노인은 아들을 잃었고, 산조에서는 주인공이 사랑했던 소년 아마오가, 주자는 동성애 관계였던 친구가, 완구점 여인에서는 어린 동생이 죽었다.


꼭 가까운 인물의 죽음을 겪지 않더라도 인물들은 죽음과 가깝다. 미명의 여자는 아이를 빼앗긴 뒤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식물인간 상태의 노파를 돌보고 살인을 한 걸로 추정되는 남자를 만난다. 적요의 노인은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햇빛만큼이나 숨 막힐 정도로 생생하게 느낀다.


왜 이렇게 거의 모든 작품에 죽음이 나와야만 했을까? 왜 불의 강의 인물들은 이렇게 죽음을 접해야만, 혹은 죽음과 가까워야만 했을까?


죽음이야말로 일상의 민낯을 가차 없이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이라는 것이 어제도 그럭저럭 살았고 오늘도 그런 식으로 살고 내일도 어영부영 관성에 실려 살 것 같은 것인데 죽음을 본 후에는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으니까. 견고한 것처럼 보였던 삶에 균열이 있다는 것, 인간의 삶에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틈이 있고 그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불의 강의 인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일상을 아무 의심 없이,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눈을 뜨고도 보이는 것 없는 것처럼 편하고 무디며 둔하게 살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삶이라는 게 그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 단단하고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걸 감지한다. 그들은 일상의 바로 한 꺼풀 아래 있는 무언가를 예민한 촉수로 느끼고 그것은 그들의 속에서 꿈틀거린다. 사납고 어둡고 붉은 것. 이 불안한 감정, 작중에 종종 '살의'로 표현되는 격렬하고 사나운 무언가를 품은 채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일상을 버텨나간다. 살의를 품은 채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불의 강의 남자는 성냥을 들고 다니며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안고 밤마다 집 밖을 헤매고 그 부인 역시 밤거리를 쏘다닌다. 미명의 여자는 '좋다, 너희들은 다 빼앗아갔지?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 이젠 내가 빼앗을 차례야, 하는 심정'을 품고 살고 안개의 둑의 남자는 살의에 가까운 충동으로 어두운 방죽에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를 홀로 두고 떠난다. 봄날의 여자는 '질식할 듯 화창한 봄날'에 찾아온 남편의 후배를 이상하게 건드리고 주자의 남자는 만나는 여자에게 내 아이를 낳아줄 수 없냐고 절박하게 매달린다. 자식을 낳는 것,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자신을 둘러싼 죽음의 공기로부터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목련초의 여자는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두 개의 머리가 돋은 독사처럼 강렬하게 피어나고 있는 목련'을 비수처럼 가슴에 품고 살며 완구점 여인의 소녀는 빈 교실에서 친구들의 돈을 훔쳐 붉은 오뚝이를 사 모으고 완구점 주인 여자에게 집착한다.


이들의 이 평범하지 않은 행동은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어떻게든 삶을 버티고 살아 보려는 발버둥처럼 보인다. 물에 빠진 벌레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걸 보는 것 같다.


문득 궁금해진다. 삶의 범속성에 쓸려버리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이 인물들은 그래서 어떻게 될까? 자신의 속에서 타오르는 불에 산채로 먹혀버릴까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발버둥을 멈추고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처럼 그냥저냥 하루하루 관성에 실려 살아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어떤 새로운 길을 찾아낼까?


아마 오정희의 다른 작품들을 하나씩 따라가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명한 작품들을 파편적으로 읽었을 뿐 제대로 진득하게 전작을 읽지는 못했는데 젊은 시절의 작품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읽어보고 싶다.


내 세대의 새로운 작가를 발견해 그 사람의 성장을 따라가는 것도 물론 행복한 일이지만 오래 전의 작가를 만나면 이미 쌓여있는 글들이 많아서 기쁘다.



+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0으로 읽었는데 「목련초(木蓮抄)」가 차례에는 목련화(木蓮花)로 적혀 있다.



밑줄


나는 십오 년 전의 동일한 어느 날 경험한 갖가지 다른 일들을 생각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아주 맑은 날이었거나 혹은 흐린 날이었을 것이다. 사내는 살인을 하고 노파는 들놀이를 나갔고 나는 해당화 꽃잎을 붙이고 해변의 솔밭에서 치마를 걷었다.


그러나 항상 동생이 그린, 벽에 가득한 그림들에서는 낮달처럼 창백한 그애의 환상이 넘실거렸고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꼈다.

불의 강 - 10점
오정희 지음/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