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책

타르코프스키의 Martyrolog - 위대한 영화 감독의 내밀한 일기


국내 번역판 제목은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남긴 방대한 양의 일기에서 유족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과 영화 작업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얘기 등을 제외하고 추린 일기 모음집이다. 1970년 4월 30일 도스토옙스키를 영화화하려는 단상에서부터 시작해서 1986년 12월 15일 폐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영화화하고 싶었던 햄릿을 읊조리며 끝난다.


1970년에서 1986년까지의 일기이기 때문에 이 사이 그가 만든 솔라리스(1972), 거울(1975), 스토커(1979), 노스탤지아(1983), 희생(1986)의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헤르만 헤세나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토마스 만 등 작가들에 대한 생각과 독후감도 있으며 잉마르 베리만, 로베르 브레송,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등의 영화감독들은 물론이요 바딤 유소프, 스벤 닉비스트 같은 함께 작업한 촬영 감독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는 인간 타르코프스키가 어떻게 삶을 살아냈는지, 억압적인 사회 체제 하의 예술가는 어떤 장벽과 마주치는지를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책이다.


수 년 간의 일기에서 타르코프스키는 끊임없이 자유롭게 영화를 찍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통을 토로한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소수 엘리트들만을 위한 영화', '지나치게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감상에만 몰두하는 영화'로 여겼다. 소련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물들은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자신들 입맛대로 뜯어고치길 원했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를 찍도록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타르코프스키는 1971년 4월 24일 토요일 일기에 이렇게 외친다.


"도대체 나를 영화감독으로 써먹으려 하지도 않는 이놈의 나라는 어떻게 된 나라인가?"


수많은 찬사를 받는 세계적인 거장은 갚아야 할 빚과 가족들을 부양할 생활비에 괴로워하고 영화를 수정하라는 상부의 요구에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영화를 찍길 원한다. 예술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의 영혼과 구원에 대해 깊이 사색한다. 그는 앞으로 찍고 싶은 영화의 목록을 적고 '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출판해 주지 않는다고 자신의 재능과는 무관한 채, 쓰는 일을 중단한다면, 그는 작가가 아니'라며 '창조의 충동이야말로 예술가의 재능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타르코프스키의 일기를 보면 그가 끊임없이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둔 걸 볼 수 있다. 만들 영화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장면으로 만들 것인지 생각했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목록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가 이것들 대부분을 끝내 영화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밝은 날' 같은 경우는 『거울』로 만들어졌지만)


타르코프스키에게 좀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는 세상에 또 어떤 영화들을 내놓았을까? 그는 어떤 점에 끌려 이것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차 태어나지 못한 영화들의 목록을 보게 된다.



1970년 9월 7일

내가 기꺼이 만들고 싶은 영화들:

1. '나치 패거리' 마르티 보어만 재판에 관하여

2. 독재자가 된 물리학자 라는 주제에 관해 (여러 가지 변형으로)

3. 《탑이 있는 오두막집》

4. 《숲속의 메아리》

5. 《탈영병》

6. 《요셉과 그의 형제들》 (토마스 만)

7. 《마트료나의 마당》-솔제니친 원작

8. 도스토옙스키에 관해

9. 《밝은 날》-가능한 한 빨리

10. 《젊은이》-도스토옙스키 원작

11. 《잔 다르크 1970》

12. 《페스트》 (카뮈 원작)

13. 《그 두 사람은 여우를 보았다.》


시나리오

1. 《마지막 사냥》 또는 《충동》

2. 《파국》

3. 하늘을 나는 인간에 관하여 : 유명한 공상과학 소설가의 모티브를 사용



- 망명지에서

1985년 8월 3일 스톡홀름

꼭 만들어야 할 영화들 :

루돌프 슈타이너 : 《복음》

헤르만 헤세 : 《황야의 이리》, 《가련한 요한나》 또는 《종교 재판관》

《성 안토니오》

《파트모스의 요한네스》



- 암으로 병원에 누워 있을 때

1986년 1월 27일 파리, 병원

정말로 다시 작업할 수 있게 완치된다면, 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햄릿》, 《성 안토니오》, 《슈타이너의 복음》.


1986년 9월 7일

이제 《성 안토니오》, 아니면 《햄릿》 작업을 준비해야 하겠다. 두 작품을 모두 만들 생각이며, 어느 것을 먼저 만들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마지막 일기

1986년 12월 15일 파리

햄릿……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전혀 일어날 수 없었다. 아래쪽 위와 등에 통증, 그리고 신경에도 통증이 심하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슈바르첸베르그는 내가 왜 그런 통증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옛날의 그 류머티즘이 화학요법 때문에 도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팔도 또한 아픈데, 일종의 신경통 같다. 결절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주 약해져 있다. 나는 죽어가는가?

햄릿……?

만약 팔과 등에 통증이 없다면 화학요법이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위해서도 남아 있는 힘이 없다. 그것이 문제다.



밑줄


나의 작품들과 내 작품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나의 인생관과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나의 사명이 무엇인가 말해야 한다면 절대적인 것에 도달하는 것, 내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의 수준을 언제나 향상시키고 또 향상시키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장인의 위엄, 질적인 수준, 어느 누구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끝장이다. 그 대신에 겉치레와 모방이 들어서고 있다. 나는 질의 수준을 유지하고자 한다. 지구를 어깨에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아틀라스는 피곤에 지쳐버렸을 때 그것을 던져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선가 그는 그것을 계속 떠받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신화의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가 그토록 오래 지구를 떠받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환멸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던져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술이란 낮은 차원에 있는 인간이 더 높은 차원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번역 : 김창우

출판 : 두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