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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번역 비교] 체호프 단편선 펭귄북스/열린책들


펭귄북스에서 낸 체호프 단편선 《사랑에 관하여》(안지영 역)와 열린책들에서 낸 체호프 단편선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오종우 역)은 단편 두 편이 겹친다.


<검은 수사>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펭귄북스)/부인(열린책들)>이 겹치는데 펭귄북스, 열린책들 순으로 몇 문장 뽑아 비교해 봤다.



<검은 수사>

그는 울며 떨고 있는 이 소녀의 신경이 반은 병들고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신경줄에, 마치 철이 자석에게 이끌리듯 응답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결코 건강하고 체격 좋고 뺨이 붉은 여인을 사랑할 수 없겠지만, 창백하고 약하고 불행한 타냐는 그의 맘에 들었다.


- 펭귄북스, 안지영 번역



그는 이 훌쩍이며 떨고 있는 처녀의 신경이 자석의 철심처럼 자신의 신경을 매우 아프게 자극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건강하고 강인하며 뺨이 붉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창백하고 가냘프며 행복하지 못한 따냐가 그의 마음을 끌었다.


- 열린책들, 오종우 번역



예고르 세묘니치는 우연히 그 말을 엿듣고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너무도 절망한 나머지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저 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마치 혀가 잘려 나가기라도 한 듯 이상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타냐는 찢어질 듯이 비명을 지르고는 기절해 버렸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예고르 세묘니치는 우연히 이 말을 듣고 방으로 뛰어 들어왔지만 절망하여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고, 마치 혀가 떨어져 나간 듯 이상한 신음 소리만 내고 그 자리에서 발만 구를 뿐이었다. 따냐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고 기절했었다. 정말 추악한 일이었다.



"지금 막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를 죽인 건 당신이니 당신 덕분이에요. 우리 정원은 죽어가고 있어요. 낯선 사람들이 우리 정원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요. 아버지가 그토록 두려워하신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이 역시 당신 덕분이에요. 내 온 영혼을 다해 당신을 증오하고, 당신이 하루속히 죽기를 바라겠어요. 아, 내가 얼마나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내 영혼을 불태우고 있어요……. 당신을 저주해요. 당신을 특별한 사람, 천재라고 생각했고, 사랑에 빠졌어요. 하지만 당신은 정신병자였어요……."


<방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버지를 죽인 겁니다. 우리 정원도 황폐해졌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요. 불쌍한 아버지께서 염려하시던 그대로 이뤄진 겁니다. 나는 이것도 당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을 내 온 마음으로 증오합니다. 난 당신이 빨리 죽어 버리기 바랍니다. 아, 나는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당신을 저주합니다. 나는 당신을 비범한 사람, 천재로 여겼죠. 그래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미친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는 타냐를, 이슬이 맺힌 화려한 꽃들로 뒤덮인 정원을, 공원과 털북숭이 뿌리를 드러낸 소나무들과 호밀밭을, 자신의 뛰어난 학문과 젊음과 용기와 기쁨을, 너무도 아름다웠던 삶을 불렀다.


그는 따냐를 불러냈고, 꽃들이 아름답고 이슬이 내린 커다란 정원을 불러냈다. 정원과 뿌리가 무성한 소나무들, 호밀밭 그리고 자신의 경이로운 학문, 자신의 젊음, 용기, 기쁨을 불러냈다. 그는 그렇게 아름다웠던 생활들을 불러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펭귄북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이곳 사람들의 해이한 윤리 의식에 관한 소문에는 거짓이 많이 섞여 있었기에 그는 그런 이야기들을 경멸했고, 그런 가십을 지어낸 자들은 대개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유사한 죄를 저지를 위인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펭귄북스, 안지영 번역



이 지역의 부정한 풍속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사실이 아니며, 할 수만 있다면 직접 저지르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들의 대부분을 지어낸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다.


- 열린책들, 오종우 번역



산책을 하며 그들은 바다의 빛이 얼마나 기이한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은 너무도 부드럽고 따뜻한 라일락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수면 위로는 달이 금빛 빛줄기를 드리우고 있었다. 또 뜨거운 낮이 지난 지금 대기가 얼마나 후덥지근한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들은 한가로이 거닐면서 묘한 바다의 빛깔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척 부드럽고 따뜻해 보이는 연보랏빛 바닷물 위로 달빛이 금색 선을 긋고 있었다. 그들은 뜨거운 낮이 지나도 여전히 무덥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잠자리에 들며 그녀가 최근까지도 자기 딸과 마찬가지로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웃음이 얼마나 겁이 많고 부자연스러웠던지. 아마 다른 사람이 그녀의 뒤를 따르고 그녀를 쳐다보고 그녀도 알아챌 수밖에 없는 한 가지 비밀스러운 목적만을 가지고 접근하는 이러한 상황에 난생처음 혼자 놓이게 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침대에 누워 그는, 그녀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딸과 마찬가지로 여학생이어서 학교에 다녔을 일을 상상했다. 그녀가 웃을 때나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 무척이나 수줍어하고 어색해하던 것을 상기했다. 분명히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녀가, 사람들이 뒤를 따라다니며 쳐다보고 그녀로서는 전혀 추측할 수 없는 은근한 목적을 가지고 말을 걸어 오는 환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했다.



"왜 내가 당신을 존중하지 않을 거라는 거지?"

구로프가 물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잖아."

"하느님, 용서해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건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당신은 그저 변명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당신을 존중하지 않게 되다니요?」 구로프가 물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하느님, 저를 용서하세요!」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그녀가 말했다. 「무서워요.」

「변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에는 이런 서글픈 순간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논리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했다면, 이제는 그런 논리를 펼 겨를이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고, 진실하고 다정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예전에 그는 슬플 때면,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논리로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제는 논리를 따지지 않고 깊이 공감한다. 진실하고 솔직하고 싶을 따름이다……. 




러시아어 원문을 확인할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펭귄북스 안지영 번역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문장이 조금 지나치게 화려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뜻을 더 잘 전달해준다.


열린책들 오종우 번역 문장은 읽다가 지금 이게 무슨 말이지? 어리둥절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안지영 번역과 비교하며 읽으니 이런 말이었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다.


단어 선택도 오종우 번역은 이 단어가 이 상황에 맞는 건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무엇보다 안지영 번역에는 있는 부분이 오종우 번역 문장에는 누락된 경우도 있었다.

사랑에 관하여 - 10점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안지영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