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 다니던 북한 유학생들이 김일성의 1인 독재를 비판한다. 이념의 이상을 믿고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던 청춘들은 이후 무국적자가 되어 유라시아 대륙을 떠돈다.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낡은 사진, 그들이 남긴 영화, 소설, 편지 등이 나오는 다큐다.
북한의 최고 엘리트로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신념과 우정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기숙사에서 쫓겨나자 숲에 천막을 치고 토론을 하고, 붉은 광장에서 분신자살까지 각오하며 '참된 사람이 되자'는 결의로 다 같이 이름을 '진'으로 바꾸는 게 2020년의 사람에게는 너무 뜨거운 청춘이라 놀라웠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하는 연설도 했던 터라 이들의 망명을 받아주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동지들을 유라시아 전역에 뿔뿔이 흩어놓는다. 헤어지기 전 이 여덟 명의 청춘들이 맹세한 행동 강령을 보면 나는 결코 알지 못할 시대의 청춘에 아득해진다.
하나, 자기 직장에서 겸손하고 근면하고 성실하고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는 모범적인 일꾼이 될 것.
둘, 언제나 자체 교양에 노력할 것.
셋, 항상 동무들의 사업과 생활과 의식 수준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들이며 일체 어느 정도라도 중요한 문제는 전원이 알게 하며 필요하면 토의에 부칠 것.
넷, 도덕적으로도 공산주의자답게 손색없는 인간으로 될 것.
다섯, 조국 정세에 대한 자기 의견을 일체 외국인들에게 절대로 공개하지 않을 것.
여섯, 투쟁과 관련되는 일체 의견을 제때 토의에 부쳐 동무들이 사태를 옳게 파악하도록 노력할 것.
일곱, 매 동무들이 서로 한 달에 한 번 이상 편지로 자기 생활에 대한 총화를 지어 동무들에게 알릴 것.
청춘이라 가능했을 이 굳은 맹세는 이후 시간과 생활에 함락되어 처음의 결기보다는 느슨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허진의 부인, 지나이다 여사는 이들이 '민족의 운명으로 묶인 관계'였고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 친구들'이었다고 회고한다.
시간이 흘러 동지들은 죽고 단 두 명의 생존자가 남아 카메라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촬영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뜨고 마지막 장면에서 최후의 생존자는 고향이 아닌 땅의 거리를 걷는다.
"사람이 태어난 곳은 고향이라는데 사람이 묻히는 땅은 뭐라고 하느냐?"
- 한진의 단편 소설 <그 고장 이름>의 한 대목
처음 시작했을 때 빅토르 최의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설원, 석양, 푸른빛의 도로를 달리는 모습, 풀숲의 유리 조형물에 '모스크바 8진'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영상의 감각이 좋았다. 작품에 확 홀리게 되는 오프닝이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모니노 숲의 풍경이나 열매가 달린 나무를 흑백으로 잡았다가 점점 색이 떠오르는 장면도 아름다웠다.
유리 조형물도 그렇지만 그 외에도 유리창에 얼굴을 겹치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잡고 친구가 찍은 설원의 영상에 생존자의 얼굴을 겹치고…. 겹을 쌓고 투영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나랑 같은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까. 내가 진정성;의 진한 맛을 좋아하며 가볍게 콘텐츠로 소비하는 역사가 개개인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 사람의 생이라는 무게가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
언어도 풍습도 다른 나라에 뿌리내려 영화로 큰 상도 받고 자기 분야에서 나름의 업적을 남긴 백발의 노인이 생애 동안 "내 민족을 위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비통해하는 순간에는 결코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민족이라는 말 자체가 내게는 화석처럼 느껴지고 '단일 민족'이라는 단어에 드는 감정은 오직 뜨악함뿐인데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북한, 무국적자, 소련, 카자흐스탄의 국적을 거친 저 노인이 인생 말년에 토해내는 그 말에는 회한이라는 단어보다 더 무거운 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를 깨워 산산이 부서진 모든 것들을 온전히 만들기 원한다."
약간 나랑 톤이나 결이 안 맞는 부분들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일차적으로 인터뷰이 때문이고 다큐의 태도 자체도 나랑은 좀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다큐의 문제보다는 내가 '나이 든 (한국) 남자'를 보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 게 큰 것 같다. 그냥 그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감이 들고 참아주기 힘든... 내 혐오가 나한테 너무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닫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김소영 감독 인터뷰에서 이 말들이 좋았다.
"나는 다큐멘터리가 다른 문화권 혹은 다른 사람과 나와의 번역 행위라고 생각한다."
"매끈한 번역은 다 봉합을 하면서, 우리가 모르고 잘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다 쳐내고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봉제를 하잖아요."
'감상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드소마 감독판 보고 주절주절 (0) | 2020.02.15 |
---|---|
교황의 고해는 왜 묵음 처리 될 수밖에 없었나-<두 교황> (2019),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0) | 2020.02.11 |
영화 보고 싶은데 영화 보기 싫을 때 보는 영화 - <24 프레임>(2017),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0) | 2020.01.28 |
올해 첫 영화 -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알랭 레네 (0) | 2020.01.21 |
2019년에 본 '개봉' 영화들 (0) | 2020.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