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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올해 첫 영화 -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알랭 레네

 

2020년 올해 본 첫 영화였다.

 

옛날 영화 말고도 영화관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사마에게 등등 봐야 하는데 영화관 갈 짬이 안 난다. 기왕 볼 거 최애 극장에서 보고 싶은데 최애 극장은 내 활동반경에서 너무 멀어서...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는 영상의 공간과 시간은 뒤섞이는데 (음성)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인물의 옷차림이 바뀌며 과거와 현재(?) 혹은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고 전경에 앉아있던 인물이 돌연 후경에서 옆문을 가로질러 나타나고 공간의 연속성을 부숴서 바로 다음 컷에서 사람은 그대로인데 공간은 다른 곳이고 그런다. 그런 와중에도 인물이 하던 말은 시간, 공간이 바뀌어도 계속 이어져서 꼭 음성이 미궁 속 아리아드네의 실 같다.

 

가끔 자막에 구애 받지 않고 영화 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영화가 유독 그랬다. 그냥 눈으로 영상 보고 귀로 말 바로 알아들으며 봤다면 다가오는 감각이 달랐을 것 같다.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최면에 걸리는 느낌도 났을 것 같은데.

 

 

오프닝 때 내레이션 나오면서 건물 천장을 쭉 훑는 게 인상적이다. 공간, 건물을 감각하게 한다.

 

아주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었다. 솔직히 졸렸다. 보면서 저 호텔에 사로잡힌 유령들의 이야기는 아닌가, 하며 자꾸 영화를 단순화시키고 떠먹기 쉬운 이유식처럼 평평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공간에 속한 유령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계속 반복하는.

 

 

인상적인 내레이션들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몇 초만 지나면 결국은 굳어져 버릴 것. 영원히, 대리석의 과거로. 돌에 새겨진 이 정원처럼."

 

 

마지막 내레이션도 근사했다.

 

"그 호텔의 정원은 프랑스 스타일이라서 나무도, 꽃도 식물이라곤 없습니다. 자갈, 돌, 대리석, 똑바른 선, 엄격한 공간. 신비함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처음에는 거기에서 길을 잃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직선의 길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 조각들과 화강암의 포석 사이에서, 그곳에서 당신은 이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원히, 깊은 밤에, 나와 함께."

 

 

블러 to the end 뮤비가 마리앙바드 오마주라 해서 봤는데 진짜 똑같다. 여자 A의 구애자 X가 데이먼 알반, 남편 역 M은 그레이엄 콕슨.

 

A가 총에 맞고 쓰러진 특유의 포즈, 환하게 화면 백화 되면서 A가 웃으며 맞이하는 장면 반복되는 씬도 그렇고, 남자들이 옆으로 맞춰 서서 총을 쏘는 장면, A 특유의 팔 위치, 유리잔 깨지는 장면, 발코니로 뛰어나가 벽에 기대어 선 장면, 델핀 세리그의 샤넬 드레스도 똑같은 건지 비슷한 건지 어쨌든 입고 있다. 너무 고스란히 그대로 따라 해서 배경이나 배우를 열화 버전으로 재연 영화 찍은 것 같다.

 

왜 굳이 이 영화를 가져다 썼는지 궁금하다. to the end 가사 보면 영화 속 A와 X의 정서랑 맞닿는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굳이, 왜? 싶다. 누구 아이디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