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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교황의 고해는 왜 묵음 처리 될 수밖에 없었나-<두 교황> (2019),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유럽과 비유럽, 스메타나와 아바, 피아노와 축구, 전통과 변화.

 

출생, 취향, 취미, 생각, 성격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한 쪽이 다른 쪽에 굴복하고 흡수되는 형식이 아니라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다른 존재여도 우정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장벽이 아니라 다리).

 

 

거기에 믿음과 인간, 죄와 고해, 변화와 신의 목소리까지 많은 것을 건드리는데 작품에서 이 모든 것을 깊이 고민했다기보다는 적당히 매끈하게 상품으로 내놓았다. 실존 인물과 그들의 삶도 그냥 소재 빼먹기 된 것 같고.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가 신부들의 성폭행 고해하는 장면이 마음에 걸린다. 영화는 몇 마디 운만 띄우고 교황의 고해를 묵음 처리한다. 진정 그들을 다루려면 피할 수 없는 장면이었는데 감당 못할 것 같으니까 슬쩍 빗겨가는 방식.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끔찍한 고통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는지는 죄다 저 편리한 묵음의 괄호 속으로 사라지고 관객에게 전달되는 건 괄호 밖의 몇 마디, "한 사제가 12년 전에 아이들을-", "난 알고 있었어야 했어." 뿐이다. 너무 비겁하지 않나.

 

고해 후 베르고글리오는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며 괴로워하지만 영화는 딱히 이 엄청난 순간을 감당할 생각이 없다. 그럴 수 없는 걸 대충 봉합하고 두 성직자는 함께 방을 나선다. 그리고 바로 사람들이 교황 알아보고 반가워하고 폰카 찍고 교황은 응하고 베르고글리오가 흐뭇하게 지켜보는 장면으로 이어져 버린다.

 

사람들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 성직자들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고해 다음 폰카 번쩍번쩍 터지고 모두가 하하호호 해피해피 박수치고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건 정말... 보다가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왜 교황의 저 고해는 묵음 처리 되어야만 했나. 왜냐하면 저 말이 소리를 획득하면 이 영화가 그리는 아름다운 미술품 속 근사한 정조가 결코 성립될 수 없으니까.

 

 

과거 독재 정권 하의 프란치스코 행적까지는 어찌어찌 영상 동원해서 버텨냈지만(죄-고해-신-사제-인간-용서-변화 등의 거대한 테마로 매끈해져서) 사제들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 직접적으로 얘기되는 순간 이 영화가 그리는 고뇌하고 대립하고 그렇지만 사랑하는 인간-천사들이라는 컨셉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영화가 성립되지 못하고 부서져 버리기 때문에.

 

실존 인물! 실화! 라고 홍보하지만 사실 그다지 실화도 아니고 다루는 인물의 가장 치명적인 진실을 묵음 처리해야만 가까스로 존재할 수 있는 실존 인물 영화라는 게 뭔가...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품 뒤에 있는 창작자의 태도가 신경 쓰인다. 그냥 처음부터 오리지널 창작을 쓰던가.

 

각본 자체의 문제인 것 같아 각본가를 찾아 봤다. 앤서니 매카튼인데 이 사람 필모 보니 실존 인물을 많이 극화했다. 스티븐 호킹, 윈스턴 처칠, 프레디 머큐리,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 보헤미안 랩소디도 너무 별로였는데 이 사람 각본은 나랑 영 안 맞는 듯. 이름 기억 해두고 앞으로는 피해야겠다.

 

마지막 장면은 2014 월드컵 결승전 보는 아르헨티나인 교황과 독일인 교황인데 이 결말도 참 너무... 우리는 2014 월드컵 결승 결과를 알고 있고 교황들을 보며 같이 피식거리게 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안고 시청을 종료하게 된다. 너무나 상쾌하게 끝내는 영화. 영화 잘 봤다, 싶은. 하지만 내가 뭘 봤는지 모르고 유쾌하게 관람하고 그 기분 좋음 속에서 결국은 차츰 휘발될 한바탕의 쇼.

 

 

물론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좋은 메시지가 있지만, 또 결코 본의는 아니겠지만 <두 교황>은 화려한 미술과 시선을 사로잡는 오래된 관례, 아름다운 건물과 음악 속을 거니는 저 높은 곳에 있는 그들이 근본적으로는 선한 존재이며 또한 우리처럼 고통 받고 고뇌하는 인간이며 그러면서도 우리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환상을 전파하는데 일조한다. 사람들이 언제든 기꺼이 믿고 싶어 하는 그런 부류의 환상팔이.

 

사람 마취시키는 영화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니고 윤리/도덕적으로 빻은 거 잘 보는데도 이 영화는 작품 만듦새가 별로라 싫은 이유 구구절절 쓰게 되네. 싫음에만 진정성 폭발하는 인간이라 큰 일이다. 

 

그 외에도 극장이 아닌 스트리밍 시대의 산물이라는 걸 너무 의식해서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한 건 아니니까 시청자가 멈추지 않고 계속 보게 하려는 수작으로 가득 찬 화면 연출도 봐주기 괴롭다. 거기에 님들 이런 거 웃기죠? 하며 적당히 뿌려주는 개그 양념까지 빠지지 않고.

 

흑백이었다가 그 화면이 컬러로 변하는 순간이랑 마지막에 비로소 하늘 위로 올라가는 촛불 연기랑 '계속 움직이세요' 기계 메시지-신의 목소리 깔아두는 것도 정말... 모든 것이 너무 뻔하고, 편하고, 얄팍하지 않나.

 

그리고 보면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게 교황청 얘기는 오늘날 영화화할 때 참 아무런 부담 없이 여성을 배제해도 별 문제 안 되는 소재라는 거.

 

콘클라베로 득실거리는 수많은 늙은 남자들. 꽁꽁 닫힌 문 안에서 오직 남자들만이 결정을 내리고 자기들끼리 남자만 될 수 있다며 땅땅 못 박은 자리에 늙남 하나 뽑아주고... 

 

 

흰 연기 검은 연기, 엄숙하게 닫히는 문, 화려한 의상, 투표지를 꿰는 붉은 실 등 온갖 멋져 보이는 의례와 전통뽕으로 버무려져서 무슨 수 백 년 전도 아니고 21세기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저 자리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으며 저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여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걸 그냥 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넘기게 된다. 오늘 날의 사람들에게 결코 무해할 수 없는 걸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게 만들어 버리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