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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8월에 읽은 책

사토장이의 딸


조이스 캐롤 오츠

박현주 옮김

아고라


엄마가 먼저 읽고 대단한 책이라 추천해줘서 집어 들었다. 사실 엄마랑은 영화나 책 취향이 잘 맞지 않는데 조이스 캐롤 오츠는 전에 엽편 하나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어 바로 읽었다.


<사토장이의 딸>은 어딘가 로맨스 소설 같았다. 다 읽고 나니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을 엽편 말고 장편 <폭스파이어>도 읽었다는 게 생각났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 독일인 가정의 딸 레베카가 폭력적인 아버지, 난폭한 남편 등의 야만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사토장이의 딸>과 빈민가의 여자 아이들이 똘똘 뭉쳐 여성 갱단을 조직하고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폭스파이어> 둘 다 장르적 재미가 강렬했다.


시대적인 배경과 다루는 내용은 만만치 않은데 서사의 재미가 뛰어나 읽을 때 훌훌 읽힌다.

그러나 엄마처럼 굉장한 책이라고 주변에 추천할 만큼 내 취향의 책은 아니었다. 

다음에는 장편보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단편집을 읽어보고 싶다.


아고라에서 나온 책인데 책의 만듦새가 형편없다. 오탈자가 너무 많아서 책을 읽다 여러 번 멈추고 오탈자를 체크해야 했다. <사토장이의 딸>에는 작가가 작품에서 맞춤법을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을 표현하거나 어린 아이를 묘사하는 의도된 오탈자가 있는데 당연히 이런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인물의 표현 방법으로 작가가 쓴 오탈자가 아니라 아고라에서 책을 만들며 편집 과정에서 생긴 오탈자가 너무 많다. 처음 한 두 번은 실수했나 보다, 생각하며 넘겼는데 책을 읽는 내내 오탈자가 끝도 없이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책을 돈 받고 팔겠다고 찍어냈을까 놀라울 정도였다.


밑줄


살아있는 데는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헤이젤은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줌파 라히리의 단편집이다. 김연수 작가가 '줌파 라히리 식 가족 오디세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이 딱 맞는다. 줌파 라히리 식 가족 오디세이.


미국에 이민 간 뱅골인 가족들이 나오는데 인도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은 이민 1세와 미국 문화에 가까운 2세들의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가족을 주로 다루는 만큼 이건 내 얘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표제작인 <그저 좋은 사람>에는 사회적 기준으로 성공한 누나와 똑똑하고 재능 있었지만 알콜 중독자가 된 남동생이 나온다. 우리 집 남매들은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나 역시 삼남매의 첫째로 부모는 아니면서 동생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입장이라 이 단편을 읽으며 동생들 생각이 많이 났다. 짐을 챙겨 동생을 대학 기숙사에 데려다주는 대목을 읽을 때는 동생2를 송도에 있는 썰렁한 기숙사에 두고 가던 날이 떠올랐다.


"그는 누나에게 이타카까지 올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굳이 가겠다고 했고, 동생이 운전하는 새 차의 조수석에 앉아 함께 내려갔다. 부모님은 그 뒤를 따랐다. 학교는 유펜과는 전혀 달라서, 농장과 호수와 폭포로 둘러싸인 언덕 위에 있었다. 그녀는 다른 신입생들의 가족과 함께 상자를 들고 학교의 안뜰을 건너가 짐을 푸는 걸 도왔다. 헤어질 때가 되자 엄마는 울었고, 수드하도 열여덟이 안 된 동생을 그런 외진 곳에 두고 간다는 생각에 조금 울었다. 하지만 라훌은 버려진다고도 해방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헤어질 때 아버지가 세어서 주는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더니 수드하와 부모님이 떠나기도 전에 등을 돌려 기숙사 쪽으로 걸어갔다."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켓

이주헌 감수

김현우 옮김

예담


BBC TV 프로그램 <Sister Wndy's Grand Tour>(1994)를 글로 정리한 책이다. 영국의 수녀이자 미술 사학자인 웬디 베켓이 유럽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미술품에 대해 어렵지 않게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조르조네의 <폭풍우>에 대한 글이 좋았다.


자세한 감상은 따로 적었다.

http://papercup9.tistory.com/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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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


"가운데서 소리치고 있는 인물, 죽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 인물이 고야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고야는 냉혹한 잔인성과 고통을 즉각 알아보았으며, 천재적 재능을 사용해 우리에게도 알려 주고 있다.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은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아무런 감명도 받지 않고 이 그림을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노에 가득 찬 얼굴이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나고, 그들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듯이 우리도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의 분노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파괴성과 영웅심을 가장 끔찍하고 감동적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8월에는 책을 정말 읽지 않았다.


더워서 귀찮기도 했고 일단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 감상문을 먼저 쓰고 다른 책을 잡으려 했는데 감상문을 쓰지 않고 미루다보니 어느 새 9월이 되어 버렸다. 


책이나 영화나 본 다음에 바로 쓰지 않으면 결국 감상을 못 남기게 되는 것 같다. 보고 나서 바로바로 기록해야지. 내 생각을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