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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8월에 본 영화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2008)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손

출연 : 리나 레안데르손(엘리), 카레 헤더브란트(오스칼)

촬영 : 호이트 반 호이테마


tv에서 해줘서 다시 봤다. 좀 볼만 하면 뚝뚝 끊어지면서 광고가 나오고 집중해서 영화를 보기에는 썩 좋지 않은 환경 때문인지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는 달랐다.


그래도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과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 감독의 조합, 리나와 카레라는 어린 배우들의 독특한 비주얼과 분위기는 여전히 좋았다.


책이 원작인 영화를 보면 보통 책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렛미인은 달랐다.

영화를 본 후에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원작 소설 렛미인을 봤는데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알프레드손 감독과 반 호이테마 촬영 감독의 조합이 만들어낸 영화로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2011)가 더 내 취향이다. 마지막에 모든 일이 끝나고 La mer가 경쾌하게 흘러나올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휘몰아친다.


하재연 시인은 영화 렛미인을 보고 안녕, 드라큘라를 썼다고 한다.


"영화의 두 아이 사이에 둘을 갈라놓는 보이지 않는 분할선이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한 아이가 뱀파이어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우리 모두는 타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각자의 세계를 가진 존재가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뱀파이어인 거죠. 보이지 않는 분할선들이 그어져 있는데, 허락을 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우정이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시를 쓰고 읽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시’라는 것도 나의 세계로 들어오라는 초대이자 그것에 대한 승낙, 그리고 들어와서 친구가 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거죠." - 하재연



안녕, 드라큘라


당신이 나를 당신의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면

나는 아이의 얼굴이거나 노인의 얼굴로

영원히 당신의 곁에 남아

사랑을 다할 수 있다.

세계의 방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햇살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살아 있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은 당신의 소년을 버리지 않아도 좋고

나는 나의 소녀를 버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세계의 방들은 온통 열려 있는 문들로 가득하지만,

당신이 고통스럽다는 사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나 하나뿐.


당신이 나를 당신에게 허락해 준다면

나는 순백의 신부이거나 순결한 미치광이로

당신이 당신임을

증명할 것이다.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낳을 것이고

우리가 낳은 우리들은 정말로

살아갈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처음 내는 목소리로

안녕, 하고 말해 준다면.

나의 귀가 이 세계의 빛나는 햇살 속에서

멀어 버리지 않는다면.





애니 홀 (1977)


감독 : 우디 앨런

주연 : 우디 앨런, 다이앤 키튼

촬영 : 고든 윌리스


인생에 대한 농담으로 시작해서 사랑에 대한 농담으로 막을 내리는 근사한 영화

자세한 감상은 따로 썼다.


http://papercup9.tistory.com/18





굿나잇 앤 굿럭 (2005)


감독 : 조지 클루니

출연 : 데이빗 스트라탄, 조지 클루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퍼트리샤 클라크슨, 제프 대니얼스

촬영 : 로버트 엘스윗


조지 클루니가 감독, 주연(프레드 프렌들리 역), 각본을 맡아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시기 CBS 앵커 에드워드 머로와 그의 동료들이 조지프 매카시와 대결을 벌인 실화를 흑백으로 영화화했다. 제목인 '굿나잇 앤 굿럭'은 실제 에드워드 머로가 방송 마무리로 하던 말이었다고 한다.


좋은 소재와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훌륭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말 영화다운 영화, 영혼을 건드리는 영화는 소재와 메시지 그 이상이 있어야 하지 않나. 나와는 맞지 않는 영화였다. 영화가 시작한지 10여분 만에 피곤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매카시즘에 맞선 언론인을 다루는 영화라는 얘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솔직히 이 영화만 봐서는 조지 클루니가 다음에 감독으로 만들 영화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진다. 조지 클루니는 훌륭한 영화감독보다는 차라리 정치인이 더 잘 맞지 않을까. 아니면 아버지 닉 클루니처럼 언론 쪽으로 활동하거나. 다큐멘터리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영화감독으로서의 조지 클루니는 또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공작 (2018)


감독 : 윤종빈

출연 : 황정민, 이성민


내 취향 아닐 것 같았는데 정말 내 취향 아니었던 영화.

윤종빈 감독은 전에 <범죄와의 전쟁> (2012)을 좋게 봤었는데 범전도 지금 다시 보면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필모 쭉 보면 그냥 이 감독 영화는 앞으로도 내 취향 아닐 것 같아.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2014)


감독 : 모리 준이치

출연 : 하시모토 아이


일본판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것도 tv에서 해줘서 봤다.

진짜 주인공이 밥해서 먹는 것만 주구장창 나온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판에 비하면 줄거리로 요약될 수 있는 서사가 있는 편이었다.


한국판 영화는 임순례 감독이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거의 없다는데 일본판은 물고기를 머리 툭툭 쳐서 기절시키고 그대로 칼로 배를 가르는 걸 고스란히 보여준다. 클로즈업해서 노골적으로 식칼로 기절한 물고기 산 채로 배 따는 걸 보여주는데 확실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관객들이 자신이 먹는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외면하지 말고 보라는 의도였을까?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에는 진돗개 오구가 나오는데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고양이가 나온다. 고양이는 언제나 귀엽다.




레디 플레이어 원 (2018)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타이 셰리던, 올리비아 쿡

촬영 : 야누시 카민스키


재미없어...

적어도 재미는 있을 줄 알았는데 재미없어...

곳곳에서 깨알 같은 개그를 날리는데 그게 꼭 회사 부장님이 젊은 애들 유행에 빠삭한 척, 잘 아는 척 하는 것 같아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냥 유머감각이나 리듬이 너무 올드해.


그리고 대사가 너무 설명충이다. 구구절절 모든 걸 설명한다. 뒤로 갈수록 관객이 알겠으니까 제발 그만 말해! 그렇게 다 말할 필요 없다고! 소리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다.


초반 레이싱 경기를 볼 때 막 차들이 다 부서지고 날아가고 킹콩 나오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는데 하나도 몰입되지 않고 그냥 멍하게 구경하는 느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영화 내내 계속 그런 느낌이었다.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바깥에서 쟤네 뭐한데? 하며 구경하는 기분.


샤이닝 파트가 제일 재미있었는데 영화를 가지고 놀이기구를 만든 것 같았다.


그래도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최초의 이스트 에그를 이야기하며 단순히 이긴 사람, 승자가 이스터 에그를 발견하게 해둔 게 아니라 그 게임을 정말 사랑하고 그 세계를 즐겨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플레이어가 발견하게 해 둔 거라는 것, 최초의 이스트 에그는 그 세계를 만든 제작자의 이름이었다는 얘기는 뭔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부분 말고는 딱히 이 영화가 자신들이 주요하게 다루는 것, 그러니까 게임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레버넌트 (2015)


감독 :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하디, 도널 글리슨

촬영 : 엠마누엘 루베즈키


tv 켰는데 마침 이 영화가 이제 막 시작하려 하기에 봤다.

이냐리투의 영화는 지금까지 바벨, 버드맨, 레버넌트 이렇게 봤는데 이 사람의 영화를 또 볼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신작 나오면 궁금해서 보기는 볼 것 같은데 이냐리투의 영화를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레버넌트에 대해서는 따로 감상을 쓰고 싶다.




8월에는 내가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서 본 게 아니라 그냥 때마침 tv에서 나오는 영화, 내키지는 않지만 지인이 보자는 영화, IPTV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영화를 봤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거나 사랑에 빠지게 된 영화는 없었다.


집에서 tv로 보는 거 말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은데 지금 극장에 걸린 영화중에는 정말로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 무료표도 네 장이나 있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못 쓰는 중. 


9월에는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다. 집에서 다 귀찮다고 리모컨 잡고 채널만 돌리고 있지 말고 멀더라도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해주는 영화관을 찾아가고 외국 문화원도 가고 도서관도 가서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기 위해 좀 더 시간과 정성과 돈을 투자해야겠다. 


올 여름은 진짜 덥고 다 귀찮다고 집에서 누가 떠먹여 주기만을 기다리며 게으르게 뒹굴기만 했다. 돌이켜 보니 남는 거 하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