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에 개봉한다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기다리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인터뷰 모음집을 읽었다. 한국어 책 제목은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 원제는 <Freddie Mercury : A Life, in His Own Words edited>.
20년 동안 프레디가 한 인터뷰를 주제별로 나눠 편집한 책인데 장점은 제3자가 퀸이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이런 저런 소설을 써 놓은 게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 본인이 한 말이라는 것이다.
단점은 인터뷰를 통째로 차곡차곡 실어놓은 게 아니라 주제에 따라 각기 다른 시기의 인터뷰들을 토막토막 잘라 묶어놔서 읽다보면 이런 토막글 형식 말고 인터뷰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대충 어떤 시기였는지 짐작은 가지만 구체적으로 몇 년도에 한 인터뷰라는 날짜가 없어서 불편하다.
어쨌든 프레디 머큐리가 20년 동안 한 인터뷰를 쭉 읽는 건 재미있었다.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쇼비즈니스맨으로서 프레디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흔히 예술가는 오로지 창작에만 신경 쓰고 홍보나 실리적인 일에는 무관심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프레디 머큐리는 달랐다. 그는 대중의 눈에 들도록 파격과 충격의 전략을 쓰며 이미지야말로 홍보에 빠져선 안 될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읽다 보면 '프레디 머큐리가 말하는 성공으로 가는 길' 따위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난 정말 굉장한 뮤지션이야! 어젯밤에 만든 노래는 또 얼마나 끝내주는지!" 이렇게 떠벌리고 다닐 수만은 없다. 내 존재를 알리겠다는 확신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만든 음악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다. 단순히 훌륭한 뮤지션, 탁월한 작곡가가 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방법도 배워야 하고, 꼭 필요한 곳에 있을 줄 알아야 하며,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업적인 거래를 하는 방법도 터득해야 한다. 그것이 로큰롤의 현주소다. 성공의 비결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본능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곧 개봉할 퀸 영화를 기다리면서 읽어서 그런지 이 구절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언젠가 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한 편 갖는 상상도 해 본다. 물론 거기서 내가 중요한 부분을 맡게 되겠지. 그렇다고 내가 직접 주연을 맡진 않을 거다. 내가 평생 해 온 일들이라는 게……, 분명 성인용 X등급이 세 개나 붙을 테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역을 맡은 배우는 라미 말렉이며 영상물 등급은 PG-13이다. 12세 미만 보호자 동반 필수. 프레디가 생각한 것보다는 점잖은 영화가 된 것 같다.
2012 런던 올림픽 폐회식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생전 영상을 가지고 퀸의 생존 멤버들이 공연하는 것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 프레디는 이미 이런 것을 예상했던 것 같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죽거나 어떻게 될 때까지 우린 어떤 식으로든 계속 해 나갈 거다. 내가 갑자기 떠나고 나면 친구들은 아마 나 대신 기계장치를 쓸 것 같다. 하지만 날 대신하긴 쉽지 않을 걸?
존 레논이나 마이클 잭슨, 앨튼 존, 섹스 피스톨즈, 데이빗 보위에 대한 프레디의 생각도 나오며 언더 프레셔나 위 아 더 챔피언, 보헤미안 랩소디 작업 비화도 있다. 앨범별로 프레디의 평도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프레디의 음악관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난 노래를 분석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해석을 붙이는 것, 자신들이 좋아하는 식으로 읽어 내는 편이 낫다. 난 그저 노래를 부를 뿐이다. 난 단지 노래를 만들고 녹음하고 제작할 뿐, 느끼는 대로 곡을 해석하는 건 판매자의 몫이다. 하나의 상품을 고안해서 거기에 무어라 딱지를 붙이는 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이 일일이 설계되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나 다 정확히 알고 있다면 얼마나 따분하겠는가. 난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 내리기를 바란다. 내가 단어 하나하나를 일일이 분석한다면 듣는 사람도 무척 따분할 테고 환상도 깨질 거다.
만약 그 모든 곡을 한 가방에 담는다면 내 노래들은 전부 '감성'이라는 꼬리표 아래 놓아야 할 것 같다. 모두 사랑과 감동과 느낌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감정에 관한 것들이다. 내가 쓰는 곡들은 대부분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이고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에 관한 것들이지만, 동시에 가볍고 장난스럽기도 하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나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난 진실로 낭만적이지만, 이 분야의 곡들이 저마다 다른 짜임새를 갖고 있듯이 나 역시 내 식대로 쓴다. 내가 새로운 걸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 앉아서 "난 전에 다른 어느 누구도 쓴 적이 없는 곡을 썼단 말이요!"라고 말할 생각도 없다. 절대 그렇진 않으니까. 단지 내 관점으로 쓸 뿐이다.
난 우리 음악이 마치 좋은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것과 같은 순수한 현실도피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 들어가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잠시만이라도 현실을 잊고 두 시간쯤 즐길 수 있다면, 바로 그런 거다. 다시 나와서는 현실의 문제로 돌아갔다가 언젠가 다시 오는 것. 정말로 그래야 한다. 연극이나 엔터테인먼트는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거다. 난 정치판에 끼고 싶지 않다. 우리 노래에는 숨겨진 정치적 메시지 따위도 없고, 우리의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린 국제적인 그룹이고 어느 곳에서든 모든 관객 앞에서 연주하고 싶다. 정치 노선이 다른 영토에 굳이 기를 쓰고 가지도 않는다. 우린 그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평범한 영국의 로큰롤 밴드다.
내 음악은 어떤 한 범주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적인 할당량에 따라 내 노래를 듣는 걸 원치 않는다. 누구나 내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다. 내 노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노래니까. 내 노래는 국제적인 언어다. 난 일본인이나 독일인만을 위한 음악은 만들지 않는다. 만인을 위한 음악이다. 음악에는 한계가 없다. 난 온 세상이 내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 난 엘리트주의자가 아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11월 24일 45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사망했는데 인터뷰를 읽다 보면 생전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쏟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살길 바라진 않는다. 정말로 그런 건 관심 없다. 일흔 살까지 살고 싶은 바람은 전혀 없다. 너무 지루할 것 같다. 그보다 훨씬 전에 죽어 없어질 거다. 이곳에 존재하지 않게 되겠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거다. 석류나무나 키우면서.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 - 그레그 브룩스.사이먼 럽턴 지음, 문신원 옮김/뮤진트리 |
프레디 머큐리
- 낯선 세상에 서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노래하다
원제 : Freddie Mercury : A Life, in His Own Words edited
편집 : 그레그 브룩스‧사이먼 럽턴
옮긴이 : 문신원
뮤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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