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사랑
미셸 투르니에
원제는 질 앤 잔. Gilles et Jeanne (Gilles and Jeanne).
칼 드레이어의 1928년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을 보고 잔 다르크에 대한 작품을 더 보고 싶어졌다. 마침 근처에 미셸 투르니에가 잔 다르크와 한 때 그녀의 전우였던 질 드 레를 가지고 쓴 책이 있어서 집어 들었다.
역사의 희미한 모티브를 가져다 미셸 투르니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다 썼다. 질과 잔을 강렬하게 대비시키고 한 극점에서 다른 극점으로 가는 것, 불의 힘, 연금술적인 방법의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유령이 움직이는 것을 보려면 사물의 표면에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런 유령 중의 한 명이 되어야 합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를 좋아한다. 내 취향이 보르헤스인 건지 보르헤스가 내 취향을 만든 건지 모르겠다.
1960년에 나온 보르헤스의 시집 <창조주>에 수록된 시 전편과 대표시 몇 편을 묶어 보르헤스가 1923년에 낸 첫 시집의 제목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라는 제목으로 민음사가 펴낸 책이다.
거울, 모래시계, 체스, 꿈, 도서관, 호랑이, 칼 등등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들을 이 시집에서도 접할 수 있다.
거울이라는 시에 나오는 문장이 좋았다.
(나는 생각하였네)
신은 거울 면의 매끈함으로 빛을,
꿈으로는 어둠을 만드는
온통 불가사의한 건축술에 골몰한다고.
'거울 면의 매끈함으로 빛을, 꿈으로는 어둠을 만드는 온통 불가사의한 건축술'이라니. 읽는 순간 시점이 핑그르르 돌면서 머리가 확 열린다. 문장의 힘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 보르헤스의 문장이 세상을 열어주는 힘, 이 전환의 순간이 좋다. 예술가는 그가 본 세상을 작품으로서 우리도 보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책이 손에 안 잡히는 상황에서 10월에는 간신히 두 권을 읽었다.
게임을 시작하면 다른 어떤 것보다 독서량이 줄어든다.
영화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영화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좋아해서 게임하다가도 한 번씩 극장에 다녀오는데 책은 얄짤 없다. 예전이었으면 책 읽을 시간인데 게임 하나 시작하면 그 시간에 무조건 게임하게 된다. 책이 게임을 이기는 건 너무 어렵다.
10월에는 트로피코5에 빠져서 열심히 근면 성실한 독재자 노릇 하느라 책을 읽지 않았다. 왕정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식민지 시대 청산하고 독립하기도 전에 왕정이 보낸 군사에게 축출당하기도 하고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장기 집권하며 버텼다가도 국가 운영할 돈이 없어서 윗동네 김씨 일가처럼 핵 쏘며 열강들에게 돈 뜯어내기도 하다 시민혁명으로 결국 쫓겨나기도 했다. 트로피코 너무 재밌어...
11월에는 좀 더 책을 읽어야 할 텐데 큰일이다. 적당히 취미 즐기는 수준으로 게임을 하면 괜찮을 텐데 절제가 안 된다. 틈만 나면 무조건 게임만 하려 하니 답이 없다. 이번 달에는 여가 시간에 집에 있는 게 아니라 도서관이나 아예 컴퓨터가 없는 곳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집에 들어가면 너무 게임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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