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좋아한다. 그의 사생활 말고 작품을.
어느 할 일 없는 요정이 나타나 세계 예술품 중에 갖고 싶은 걸 딱 한 점 준다하면 나는 아마 자코메티의 조각을 고를 것 같다. 큰 거 말고 아주 작은 걸로.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작품을 들여놓으면 방안이 사원처럼 되어 버릴 것 같다고 했는데 이 말에 동의한다.
파이널 포트레이트가 나왔을 때 영화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잘해야 평작인 것 같았다. 평소라면 굳이 먼 상영관까지 찾아가 볼 영화는 아니라고 넘겼을 텐데 이건 자코메티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서 보고 왔다.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단순한 영화다. 자코메티의 모델이었던 제임스 로드가 쓴 책에 기반했다. 자코메티의 모델이 된 제임스가 몇 주 동안 예술가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자코메티의 예술관과 삶, 그리고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둘러싼 사람들-동생 디에고, 아내 아네트, 연인 캐롤린 등등-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걸어가는 사람을 포함한 수많은 조각들로 가득 찬 자코메티의 회색빛 작업실을 볼 수 있고 캐롤린을 그린 초상화와 제임스 로드의 초상화처럼 반가운 그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시각적인 재현에 꽤 공을 들였다.
- 실제 자코메티의 작업실
-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 속 자코메티 작업실
아미 해머는 내게 말끔하게 잘생긴 외국 배우 1이었고 자코메티의 그림과는 별로 매치가 되지 않았는데 영화에서는 어느 순간 자코메티가 본 제임스 로드, 초상화 속의 바로 그 사람으로 보여 신기했다. 자코메티의 조각을 먼저 알았고 조각 때문에 자코메티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았을 때는 조각보다 유화가 강렬했다. 제임스 로드뿐만이 아니라 캐롤린이나 아네트의 초상화에서 그냥 눈 모양을 평면에 그려놓은 게 아니라 그림을 통해 인간의 시선이 느껴져 초상화 앞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그런데 짧은 순간 카메라에 담긴 아미 해머에게서 그 비슷한 느낌이 났다. 배우가 영화 속 자코메티가 시키는 포즈대로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데 내가 본 자코메티의 초상화가 머릿속에 확 떠오르면서 그 느낌이 전달되는 게 좋았다.
자코메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에 등장하는 것들을 보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것 같다. 디에고가 만든 작은 새나 캐롤린의 붉은 자동차, 영화 크레딧에는 이름 대신 그저 '아네트의 연인'으로만 표기되었지만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중요한 모델 중 하나였던 '야나이하라 이사쿠'의 등장 등등.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이 영화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묻게 된다. 파이널 포트레이트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예술관이나 삶을 책이나 그림이 아닌 영화만의 예술로 제대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는가? 아니면 이 영화는 그냥 제임스 로드가 알베르토의 초상화 모델이었던 짧은 시기를 통해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그 주변 사람들을 단편적으로 표면만 스케치한 것에 멈춘 건 아닌가.
이런 영화라면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오롯이 한 명의 인간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어야 한다. 영화가 끝났을 때 자코메티에 대해 알았던 관객이건 전혀 몰랐던 관객이건 영화가 표현한 인물이 한 명의 사람으로 마음속에 와 닿아야 한다. 그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의 삶과 예술에 대해 뭔가 가슴속에 파동을 그리며 다가오는 게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파이널 포트레이트의 자코메티는 피와 살과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관객에게 전해지지 못한다. 이 영화는 그냥 수많은 미디어에서 전형적으로 다루어진 '사생활 지저분하고 괴팍한 천재 예술가 1'로 자코메티를 대충 뭉개며 묘사할 뿐이다. 제프리 러시의 연기도 영화 만듦새가 단단히 뒷받침해주지 못하니 끝내 자코메티가 되지 못하고 순간순간 과장처럼 낭비되어 버리거나 특별한 인상 없이 가볍게 지나가 버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좀 더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안이한 장면들의 나열만으로는 결코 인물이 인간으로 그려지지 않으니까. 그러나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단 한 순간도 치열하게 관성을 뚫고 들어가 영화만의 방법으로 자코메티를 그려내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이때의 치열함은 그냥 단순히 영화를 무겁고 흔히 말하는 '진지하게' 만들라는 게 아니다. 분위기가 가볍건 무겁건 유쾌하건 우울하건 창작자가 더 고민했어야 했다. 그냥 관객에게 '있었던 일'을 적당히 각색해서 보여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자코메티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스럽고 자코메티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무색무취의 영화가 된 것 같다.
스탠리 투치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는데 이 영화만 보면 이 사람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지 않는다. 지금 파이널 포트레이트의 단편적인 장면들, 자코메티가 세잔이나 피카소에 대해 하는 말들, 초상화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말이나 자기 조각을 부수고 그림을 불태우는 장면들만으로 정말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삶과 예술을 한 편의 영화로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내게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창작자의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는 안이한 장면의 나열로만 느껴졌다. 스탠리 투치의 치열함도, 자코메티의 치열함도 전달되지 않았다.
자코메티가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을 통해 그의 삶과 예술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려는 영화인데 자코메티가 하나의 작품을 대하는 자세로 영화를 찍었다면 절대 이런 영화를 내보낼 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나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온 힘을 모조리 다 초상화 속에 담아내지는 못할 겁니다. 단지 살아간다는 사실 하나만 해도 벌써 굉장한 의지와 에너지를 강요하니까요…."
- 알베르토 자코메티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름다움에 바탕을 둔 예술은 미제라빌리슴(생활참상묘사주의)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중에서
파이널 포트레이트 (2017)
감독/각본 : 스탠리 투치
출연 : 제프리 러시, 아미 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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