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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10월에 본 영화



타샤 튜더 (2017)


감독 : 마츠타니 미츠에


굳이 영화관에서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자세한 감상은 http://papercup9.tistory.com/39






올 더 머니 (2017)


감독 : 리들리 스콧


so-so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 없음.







너는 여기에 없었다 (2017)


감독 : 린 램지

출연 : 와킨 피닉스


린 램지의 다음 영화를 빨리 보고 싶다

감상은 http://papercup9.tistory.com/43



small deaths (1996)

감독 : 린 램지


kill the day (1996)

감독 : 린 램지


swimmer (2012)

감독 : 린 램지

난 물에 너무 약하다. 물, 잠수, 수영 이런 게 나오면 너무 쉽게 사로잡히고 만다.




베를린의 말 (1970)

감독 : 말콤 르그리스

컬러와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의 어우러짐이 좋다. 괜히 향수가 느껴짐.






퍼스트맨 (2018)


감독 : 데미언 셔젤

출연 :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음악 : 저스틴 허위츠


난 위플래쉬랑 라라랜드 쪽이 더 좋아

감상은 http://papercup9.tistory.com/46




remedial reading comprehension (1970)

감독 : 조지 랜도우


연보라색 하늘에 검은 나무 배경으로 남자가 뛰는 연출이 좋다


THIS IS A FILM ABOUT YOU

NOT ABOUT ITS MAKER






라스트 씬 (2018)


감독/촬영/편집 : 박배일


내 현실과 맞닿아 있는 다큐멘터리를 피했다. 보면 우울해질 것 같고 마음만 무거워지고 답도 없이 불편해지기만 할 것 같아서. 라스트 씬을 보고 내가 작품을 보지도 않고 못된 선입견만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라스트 씬>을 보면 영화관이라는 공간과 영화관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감상 따로 씀 http://papercup9.tistory.com/49






잔 다르크의 수난 (1928)


감독 :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출연 : 마리아 팔코네티, 앙토냉 아르토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의 얼굴 클로즈업이라던가 마리아 팔코네티의 눈물이라던가 창틀에 비친 햇빛이 바닥에 그리는 십자가라던가 이래저래 사전에 주워들은 게 있었다. 영화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영화는 뭔가 박제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영화 자체에 집중해서 보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쉽게 쉽게 본 영화들과 다른 목표,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같은 걸 전에는 딱히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잔 다르크의 수난>은 영화가 끝난 뒤 저절로 그런 걸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란 게 정말 뭐고 이 영화의 창작자들은 영화를 통해 무엇을 하려 했는지.







풀잎들 (2017)


각본/감독 : 홍상수

출연 : 김민희, 정진영, 기주봉, 서영화, 김새벽, 안재홍, 공민정, 안선영, 신석호, 김명수, 이유영

촬영 : 김형구


나는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할 줄 알았다.

영화 보기 전에 '풀잎들'이라는 제목 보고, 작은 새싹들을 찍은 흑백 포스터 보고, 짤막한 소개글을 읽었다.


커피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안으로 커피집이 있고

사람들이 커피집 안 여기저기에 앉아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밖에는 건너편 슈퍼 아줌마가 심어 놓은 몇 가지 종류의 야채의 새싹들이 고무대야 안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로 섞이고 서로에게 익숙해집니다.

한 여자는 그들을 관찰하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밤이 되도록까지 커피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너무 좋지 않나. 더 찾아 볼 것도 없다 싶었다. 이 영화 꼭 봐야지, 하고 결심했다.


저 짧은 글에서 내 마음을 끌었던 건 '커피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안'에 있는 커피집과 '건너편 슈퍼 아줌마가 심어 놓은 몇 가지 종류의 야채의 새싹들이 고무대야 안에서' 자라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관찰하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한 여자.


짬내서 상영관에 다녀왔는데 영화는… 미묘했다. 막 기대했던 것처럼 마음을 우수수 흔들거나 사람을 한없이 사로잡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풀잎들은 정말로 뭐라 말을 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좋다고 할 수도 싫다고 할 수도 없는 영화.


흑백 영화인 줄 몰랐는데 흑백 영화였다. 왜 흑백일까, 왜 흑백으로 찍어야만 했을까 궁금해졌다. 끝부분에 한옥을 입은 커플이 골목에서 사진을 찍을 때 플래시가 한순간 섬광처럼 빛난다. 흑백이 아니었다면 그 플래시가 그렇게 새삼스레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마지막에는 흑백 사진 같은 스틸 컷들이 하나씩 나온다. 풀잎들이 왜 흑백 영화인지를 이해하는데 '사진'이라는 게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영화 자체는 막 그렇게 좋아서 미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보고 나서 극장을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이상하게 영화처럼 느껴졌다. <라스트 씬> gv 다녀온 뒤 빛이 흐르는 영화관에 대한 애정을 새삼스레 느끼던 참이었는데 <풀잎들>을 보고 나니 모든 게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레 주변의 것들이 참 아름답다 느껴졌다. 오래된 극장 안에 흐르는 빛이랑 영화관에서 나지막이 틀어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Sunday morning도 너무 좋고 낡은 의자와 녹색 소파, 창 밖에 보이는 주차장의 사람들과 흘러가는 구름도 좋았다. 이 극장을 영화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의 건너편 (2017)


감독 : 아키 카우리스마키

출연 : 셰르반 하이, 사카리 쿠오스마넨


보고 나서 기록을 안 해뒀더니 생각나는 게 별로 없다. 영화 헛으로 봤네. 

영화의 질감? 그런 것 때문인지 이상하게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생각나는데 왜 떠오르는지 잘 모르겠다. 둘이 딱히 관련은 없어 보이는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2017)


감독 : 프레드릭 와이즈먼


내가 좋아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시에서 예산 따고 민간 투자 받아 무엇에 투자할 것이냐, 전자책이냐 실물책이냐, 베스트셀러냐 학술책이냐, 노숙자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등등 결정을 내리는 도서관의 치열한 '노동자들'을 보여준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들을 지원하고 흑인 커뮤니티와 아이들 공부방으로 이용되는 도서관의 모습도 나온다.

작가와의 만남이나 음악회 같은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도 나온다.

점자책, 오디오북도 나오며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정보 소외층에게 핫스폿을 나누어주는 장면도 등장한다.

단순히 책만 보는 도서관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을 보여주는데 막 그렇게 흥미롭지도 않았고 이게 왜 영화여야만 했는지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흐트러지다 (1964)


감독 : 나루세 미키오

출연 : 타카미네 히데코, 가야마 유조


나루세 미키오라는 이름이 유명해서 봤다. 영화나 문학이나 일본 작품하고는 잘 안 맞아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 밖으로 너무 재밌었다. 10월에 본 영화 중 순수하게 영화 보는 동안의 재미로는 이게 최고였다.


형수와 시동생의 사이의 말 못할 감정이 나오는데 아무 정보 없이 보다가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피어올라서 좀 놀랐다. 옛날 어르신들은 이런 걸 보셨구나 신기하기도 했다. 형수와 시동생이라니, 막장 드라마에서도 찾기 힘든 설정 아닌가.


와, 이거 재밌네 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이 굉장히 강렬했다.


자신이 만들어준 종이 반지를 끼고 죽은 코지의 시체를 쫓아가던 레이코. 코지의 시체는 멀어지고 휘청거리며 뛰어가던 레이코는 어느 순간 멈춘다. 그리고 그 레이코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주며 끝내버린다. 


<흐트러지다>는 영화 내내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고 드러낼 수 없는 아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그에 따라 카메라도 조심스러운 것처럼 움직였던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과감하다 해야 되나 뭔가 강력함이 느껴진다. 손만 나온 시체를 들고 가는 사람들의 움직임,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발, 그걸 쫓아 달려가는 레이코의 모습, 그걸 번갈아가며 잡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강력하게 느껴지고 스크린 가득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레이코의 얼굴을 잡는 그 마지막 마무리에서는 낄낄거리며 영화를 재미있게 그저 소비하고 있던 내 뺨을 살짝 치는 것 같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엔딩이었다. 상영관에는 노년의 관객이 많았는데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영화가 끝나자 객석에서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비정전 (1990)


감독 : 왕가위

출연 : 장국영, 장만옥, 유가령, 유덕화, 장학우, 양조위

촬영 : 크리스토퍼 도일, 유위강, 오지군

미술 : 장숙평


영화 초반 장국영은 장만옥에게 수작을 부리며 멘트를 날린다. 1분만 시계를 함께 봐달라고 한다. 두 사람을 손목시계를 본다. 1분 뒤에 장국영은 말한다. 1960년 4월 16일 3시 1분 전, 우리는 1분 동안 함께 했고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라고.


장국영이니까 먹히는 멘트네, 생각하며 영화를 봤는데 4월 16일이라는 날짜가 이상하게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4‧19 혁명도 아니고 누구 생일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집에 와서야 깨달았다. REMEMBER 0416이었다. 잊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


아비정전을 왕가위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타락천사보다는 괜찮았지만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 해피투게더를 볼 때처럼 처음부터 완전히 사로잡히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볼 때는 그저 그랬다가도 보고 나서 오랫동안 영화의 이미지나 정서, 분위기 같은 잔상이 오래 남는 영화였다. 좁은 공간, 비가 오는 밤거리, 필리핀의 우거진 숲, 시계소리, 하얗게 빛이 번진 화면 같은 것들이 계속 따라다닌다. 왕가위의 영화를 싫어하는 건 너무 어렵다. 아비정전은 다음에 다시 보고 싶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박찬욱 감독이 아비정전에 대해 쓴 글 중에서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의 독백은 모두 일종의 회고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 회고를 하고 있는지는 관객이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게 있다면 이들의 과거뿐. 그것은 행복한 추억이라기보다는 혼란스러운 꿈이고, 꿈이되 악몽이라기에는 아름답고, 길몽이라기에는 우울한 꿈……. <아비정전>은 수수께끼의 미몽迷夢이다."






10월에는 그래도 집에서 게으르게 누워 tv 채널만 돌리다 얻어 걸리는 영화를 보기보다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관심 가는 감독의 단편 영화나 실험 영화도 찾아 봤고 영화제 프로그램도 챙겨 보려 했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아예 안 부린 건 아니라 방랑기, 연쇄살인마, 비브르 사 비, 오늘 밤 사자는 잠든다는 보려고 꼽아 놨다가도 그저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흘려보냈다. 다음에 또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10월에 본 영화들을 11월이 되어 쭉 정리하는데 새삼 잔 다르크의 수난은 참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박제가 된 영화라 그 영화 자체를 경험하는 게 아니라 그 영화가 가진 어떤 역사성, 그 영화를 찬사한 수많은 권위자들에게 관습적으로 무릎을 꿇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내 눈으로 영화관에서 보는 경험을 하길 잘했다.


흐트러지다는 10월에 본 영화 중 영화를 볼 때 가장 순수하게 재밌게 본 영화라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더 보고 싶다. 또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어두운 영화관에서 오래된 흑백 영화를 집중해서 볼 때의 느낌이 좋았다. 영화가 끝났을 때 다른 관객이 터뜨린 탄식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기왕 영화를 볼 거면 tv로 영화를 보는 것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스크린 크기나 음향 같은 시설의 영향도 있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둠 속에서 같은 영화를 함께 경험할 때 그 한순간의 묘한 영화 공동체 같은 느낌이 좋다. 휴대폰 불빛이나 말소리, 의자 걷어차는 것 같은 비매너가 있을 때는 진짜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가 나고 극장에 나 말고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뭔가 지금 스크린에 흘러나오는 영화를 극장 안의 관객들이 다함께 홀려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그 순간 같은 영화를 보며 같은 공간에 함께하는 타인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10월에 본 영화 중 아비정전은 참 이상한 영화다. 볼 때는 막 그렇게 감명 깊고 울림이 크고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보고 나서 이상하게 어떤 야릇한 감상이 끈덕지게 내게 붙어있다. 또 다시 왕가위의 마법에 걸려 버린 것 같다.


이제 11월인데 이번 달에 만나게 될 영화들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