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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더 페이버릿 (2018)이랑 로마 (2018) 보고 주절주절

(스포 있음)


웬만하면 하루에 한 편씩 보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안 맞아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로마를 한 날에 이어서 몰아봤다. 





먼저 더 페이버릿부터 말하자면 일단 재미있다. 그냥 웃겼어. 미술이랑 의상도 아름답다. 하지만 요르고스 란티모스 특유의 느낌은 많이 희석되었다. 목을 조이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더 페이버릿이 늘 직접 시나리오를 써왔던 란티모스가 다른 이의 각본으로 처음 연출한 영화라고 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촌스러운 표현인데 연기가 참 맛깔났다 라고 밖에 못하겠다. 올리비아 콜먼이 이 영화 앤 여왕 역으로 91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고 애비게일 역의 엠마 스톤, 사라 역의 레이첼 바이스는 각각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만 올리비아 콜맨, 엠마 스톤, 레이첼 바이스 다 이 영화의 주연이라 생각한다. 세 사람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각자의 욕망, 사랑 등을 품은 채 팽팽하게 극을 이끌어나간다. 




올리비아 콜맨은 브로드처치 때 처음 보고 인상 깊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참 좋았다. 대사도 잘 살리고 작은 근육 하나하나마저 컨트롤 하는 것처럼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앤이라는 사람의 내면을 너무나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보고 있으면 몇몇 장면에서는 막 빛이 나는 것 같다. 지금 생각나는 건 사라가 남자랑 춤추는 장면에서 처음에는 즐겁게 음악을 들으며 지켜보다가 점점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더니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다른 얼굴이 되던 장면. 그 때 강렬한 캐릭터성을 가진 사라와 마치 그녀의 등장이 이야기의 시작인 것처럼 상대적으로 관객들이 초반에 동조하기 쉬운 위치에서 출발하는 애비게일 사이에서 다소 유약하고 떼쓰는 어린애처럼 보였던 여왕이 탁 떠오르며 관객의 시선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았던 것 같다. 





사라 역의 레이첼 바이스는 그냥 반해버렸다. 존재 자체가 간지다. 캐릭터인 사라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라 나올 때마다 홀린 듯이 봤다. 특히 의상이 캐릭터의 매력을 구축하는데 한 몫 두둑이 한 것 같다. 드레스도 좋았지만 사격할 때 겉에 걸친 흰 코트(?) 같은 옷도 너무 근사하고 검은 승마복을 갖춰 입었을 때는 와 미쳤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중에 얼굴에 상처 났을 때는 상처 자체도 매력적이었는데 섬세한 검은 레이스로 얼굴 한쪽을 가리고 그 검은 레이스가 초커처럼 목까지 이어져 둘러져 있는 거 보고 이 영화의 의상 담당은 정말로 배우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비게일의 엠마 스톤은 사실 특유의 과장되었다고 해야 하나 뭔가 드라마틱한 얼굴 표정 쓰는 법이나 연기 스타일이 나랑 맞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엠마 스톤의 연기 스타일과 애비게일이라는 캐릭터가 잘 맞아 보인다. 라라랜드로 89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탔을 때만 해도 라라랜드를 좋아하고 엠마 스톤도 호감이지만 왜? 라는 당황스러운 기분부터 들었다. 더군다나 당시 여우주연상 후보가 엘르의 이자벨 위페르, 러빙의 루스 네가, 재키의 나탈리 포트만, 플로렌스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날고 기는 쟁쟁한 배우들이라 더 '엠마 스톤이요? 여기서요?' 싶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계속해서 발전하는 배우인 것 같다. 페이버릿에서는 합을 맞추는 상대가 올리비아 콜맨에 레이첼 바이스인데 쪼그라들지 않고 자기 몫을 훌륭하게 해낸다. 아니 더 페이버릿에서는 그냥 한 사람의 자기 몫을 해낸 것 이상의 무언가를 엠마 스톤이 영화에 불어넣었다는 생각도 든다. 


인물들이 랍스터랑 사슴 먹는 게 웃겼다. 굳이 굳이 랍스터랑 사슴 고기라니. 란티모스의 전작 랍스터, 신성한 사슴의 살해(킬링 디어)를 생각하면 재미있다.  


재밌고 편하게 봤지만 감독 색깔도 덜하고 막 그렇게 기대만큼 좋았던 작품은 아니었다. 란티모스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 하던데 그 평에 동의한다. 나한테 더 페이버릿은 그냥 재미있고 배우들이 연기 잘하는 무난한 시대극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랐던 건 약간 비주얼 독특하고 란티모스 감성 1그램 들어간 웰메이드 시대극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였고. 극중 사라의 말을 빌리자면 '우린 게임의 목적이 전혀 달랐어'인 셈이다.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던 건 더 페이버릿 다음으로 보았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봐. 




로마는 꼭 흑백이라서가 아니라 뭔가 묘하게 옛날 영화들이 떠올랐다. 마르셀의 여름 같은 거. 친척 농장에서 연말이랑 새해 보낼 때 숲에 불이 나고 사람들이 불을 끄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특히 고전 느낌 났던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장면에서 갑자기 타르코프스키 생각도 났다. 진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로마는 물 흐르듯 보게 되는 영화였다. 그냥 저 70년대 초 멕시코의 한 가정과 클레오라는 한 사람의 삶을 지켜보는 느낌. 


음향을 되게 공들였다. 사운드의 층이 많다.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인지, 멀리서 들리는 소리인지 레이어를 많이 깔아서 내가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공간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영화관에서 보긴 봤지만 더 시설이 좋은 극장에서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에 조금 아쉬울 정도였다. 넷플릭스로 tv나 컴퓨터 모니터로 보기 보다는 확실히 영화관에서 봐야하는 작품이다.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도 관객이 극장에서 보길 원한다 하고. 


카메라는 쿠아론이 곧잘 하는 방식대로 롱테이크도 많고 패닝도 많다. 몇몇 장면에서는 그의 전작들도 스쳐지나간다. 쿠아론의 팬이라면 그의 영화의 원형이 된 이미지들을 로마를 통해 개인적인 씨앗, 근원을 살짝 엿보는 느낌이 날 것 같다. 


한 장면에서는 눈물도 절로 흘렀는데 클레오의 출산 장면이었다. 솔직히 안 울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아이가 죽은 채로 태어나고 그래도 그 아이를 안아보는 클레오의 모습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포스터에도 나온 후반부 대망의 바닷가 씬에서는 막 그렇게 무릎을 꿇게 되거나 영혼을 건드리는 아름다움에 감복하게 되지는 않았다. 클레오가 거친 파도가 덮치는데도 파도를 거슬러 계속해서 전진하는 순간은 연출 자체가 단순한 그 상황을 넘어 장면 이상의 감정을 느끼도록, 울림이 있게 설계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의도대로 장면 자체가 뭔가 더 무게감 있게 마음에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이렇게 연출하면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보겠지 하는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연출이 많아 촌스럽게 왜 이러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영화가 뭔가 너무 노림수가 뻔히 보이는 것 같은 연출이 꽤 있었다. 화면 아래 계산이 고스란히 보이는 것 같은 장면들. 




나중에 무사히 해변에 돌아와서 다들 서로 껴안고 있는 씬에서 클레오가 차마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속 깊숙이 묻어두었던 말인 것처럼 죽은 아이에 대해 "전 그 애를 원하지 않았어요" 하며 울음 터뜨리는 건 '아 또 이거야' 이런 생각부터 들어서 오히려 감정적으로 영화와 멀어졌다. 


못된 말인 거 아는데 솔직히 저런 거 자체가 너무 지겨워... 아니, 지겹다는 말은 정말 심한 것 같고 저런 걸 저런 식으로 다루는 방법이 싫다. 여자 아이들의 초경을 가지고 막 소설에서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 식으로 서술하는 쌍팔년도 감성만큼이나 사람 짜식게 한다. 베리만 가을 소나타 볼 때도 느꼈는데 정말로 이제는 작품에서 여성의 초경이나 임신, 임신 중단 및 출산에 대한 다른 관점,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언어의 필요성을 느낀다. 솔직히 저런 장면, 영화나 문학을 막론하고 사산하고 사실은 내가 그 애를 원치 않았어 흑흑 하며 우는 엄마, 임신중단을 거대한 원초적 죄악인 것 마냥 죄악감에 괴로워하는 엄마 뭐 이런 거 정말 너무너무 많이 나왔고 거의 대부분 너무 뻔하고 전형적으로 그려졌잖아. 마치 그 자체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덩어리 턱 하니 던지고 끝내버리잖아. 


꼭 로마가 그런다는 건 아니지만 막연한 모성애 신화,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하나의 압도적인 커다란 덩어리 같은 모성 주제는 갈수록 안 먹힐 것 같다. 옛날에는 그냥 보편적이고 군말을 붙일 필요 없이 모성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막 가슴을 짜르르 울리며 대중에게 먹히는 키워드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너무나 각자 결이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서 좀 더 샤프해지거나 섬세해져야 한다. 저것만으로 척수반사급으로, 무조건적으로 본능에 새겨진 것 같은 깊은 울림이나 근본적인 공감, 가슴 깊이 끓어오르는 이해를 느끼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 


잠깐 곁다리로 빠졌는데 중요한 건 로마라는 프로젝트 자체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때 그 공간과 시간을 영화를 통해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까지 새로이 구축하고 되살리는 작품인 만큼 쿠아론의 그 애정, 향수, 존중,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에 별로 공감을 하지 못하면 큰 감동을 받기 어려운 것 같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예술을 통해 보편적인 힘을 획득하게 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건데 로마라는 영화가 지금의 수많은 평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알폰소 쿠아론이라는 한 존재가 소중하게 품고 있던 특수한 개인성을 예술을 통해 보편적인 위치까지 올려놓은 작품인지 좀 의심이 든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마치 모두가 로마를 통해 그런 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처럼 로마가 어떤 초월적인 작품인 것 마냥 로마의 영화적 성취를 두고 하는 말들이 내게는 과장처럼 느껴진다. 잘 만든 영화라고는 생각하지만 어쩐지 뭔가 지금의 비평이 다소 호들갑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무튼 두 편 다 기대하고 영화관에 간 작품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내 취향은 아니어서 아쉬웠다. 영화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내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지금의 나는 영화를 보면서 뭔가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 같다. 그게 뭔지 나조차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어떤 영화들에서 분명 만날 수 있는 영화 그 이상의 것,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느 장면에서 문득 스크린 위에 번지는 이상한 하얀 빛으로 다가오는 것. 


고전을 뒤지면 더 찾기 쉽겠지만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동시대 영화를 만나고 싶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만들어지는 영화에서 미친듯이 빠지고 사랑할 수 있는 영화 이상의 영화를 만나고 싶다. 어째 이 말을 매번 하는 것 같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2018)


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 올리비아 콜먼, 엠마 스톤, 레이첼 와이즈



로마 (2018)


감독/각본/촬영 : 알폰소 쿠아론

출연 : 얄리차 아파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