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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테메레르, 2권까지 읽으니까 더 이상 흥미가 안 가

 

《테메레르 1, 2.》 나오미 노빅, 공보경 역, 노블마인

 

 

1권 왕의 용은 술술 읽혔는데 2권 군주의 자리는 1권보다 재미없었다. 왜 2권은 1권만큼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생각해봤다.

 

먼저 새로운 배경인 중국이 흥미롭게 구현되지 못했다. 1권에서는 해군 대령 로렌스가 뜻밖의 용의 알을 얻고 원치 않게 용의 비행사가 된다. 해군인 로렌스는 용과 함께 근무하는 영국 공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독자는 로렌스와 함께 모르는 세계에 진입한다. 다른 세계를 다루는 판타지에서는 이런 설정이 몰입하기 좋은 것 같다. 해포에서 머글 세계에서 자란 해리가 마법사 세계에 입성할 때 독자인 나도 같이 그 세계에 들어가는 것 같아 흥미진진했던 것처럼.

 

2권에서는 로렌스가 중국에 가는데 1권처럼 인물이 자신이 가는 세계에 알못인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2권에서 그려지는 중국은 1권에서 로렌스와 테메레르가 공군의 세계로 뛰어든 것처럼 살아내는 것보다는 관광하듯 그려지는 1차적 묘사에 가깝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 많은 전각들과 궁, 중국의 용, 용과 함께 사람들이 지내는 거리를 인물의 깊은 체험을 통해 독자가 세계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인물의 눈에 비치는 표면을 묘사하는데 이 시리즈에서 중국은 이런 나라야, 하는 설정, 작품 뒤의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작품이 덜 된 설정 나열에 그치는 것처럼.

 

2권에서 나름 중요한 플롯인 중국의 궁정 음모, 황권 다툼도 맥이 빠졌다. 황제의 형인 용싱 왕자의 미묘한 권력 투쟁이 로렌스와 테메레르에게 영향을 주는데 중국 황실 배경으로 한 뛰어난 궁중물은 많지 않나. 책사들이 날고 기는 궁정 암투 보다가 이걸 보면 뭔가 어설프다. 중국 황실 궁정 암투인데 이게 최선입니까? 하는 생각이 들음. 용싱 왕자 심계가 너무 얕아 보여...

 

캐릭터성도 아쉽다. 1권 인물들은 개성이 있고 살아 숨 쉬었다. 너무 싫었던 랜킨도 한 인물로서의 생생함이 있었는데 2권에서 등장한 중국 관리들은 밋밋하고 전형적이다.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하면 중국 쪽 사람들은 피와 살을 가진 인물이라기보다는 얄팍한 캐릭터였다. 이런 역할을 해라, 하는 지시를 수행하는 종이 인형. 중국 쪽 인물들을 더 흥미롭게 만들 수는 없었을까 아쉽다. 캐릭터성이 별로니까 책에 대한 흥미도 떨어짐. 중국인들이랑 얽혀서 벌어지는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느껴지지 않음.

 

무엇보다 1권에서는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첫 만남에서부터 관계 발전, 공군 기지에서 동료들과의 우정, 절정부인 나폴레옹 전쟁까지 모든 것이 커다란 줄기가 있고 전체적인 흐름이 있다고 느껴졌다. 반짝이는 장면 장면만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있었음.

 

그런데 2권은 그런 느낌이 부족했다. 파편 파편 일화들의 조합이라 느껴짐. 만들어진 인물과 설정을 가지고 나온 에피소드의 나열. 예쁜 구슬은 있는데 그걸 연결하는 줄이 약해 목걸이가 되지 못한 느낌. 인물, 갈등, 관계, 사건, 모든 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기보다는 중국 가는 길에 이런 에피소드, 중국 가서 이런 에피소드, 여기에 마지막 결말 더한 조립품 같음.

 

그리고 2권에서 테메레르가 용들이 자유롭게 지내는 중국과 그렇지 못한 영국을 비교하며 사회 체제 고민, 용으로서의 정체성 등등, 정신적 갈등을 겪는 게 대사로 줄줄 나오는데 솔직히 매력을 못 느낌... 테메레르는 줄줄 자기 생각 대사로 토해내고 로렌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 주제에 별로 관심이 안 가... 3권은 이스탄불이 배경이라는데 다음 권은 생각 없다. 내가 이 시리즈에 바라는 거랑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게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