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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2017) - 신은 당신 같은 모습이 아니야 스포 있음 이사 준비로 바빠서 날 새고 조조로 본 영화였다. 피곤한 몸으로 극장 시트에 앉았는데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오프닝이 나오는 순간 '이 영화,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이 너무 게으르고, 너무 쉽게 정리해버리는 말이고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낡고 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에는 이 말이 참 잘 어울린다. '어른'이라는 것에 방점을 둔 표현으로서도, '동화'라는 말에 방점을 둔 표현으로서도. 영화는 마법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며 물에 잠긴 방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방에는 가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잠든 여인도 물속에 떠있다. 마치 마법에 걸려 잠든 공주님처럼. 그리고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이미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는 자의..
굿타임 (2017) 보고 이런저런 잡생각 1. 올해 본 영화중에 제일 웃기네 1월에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1998)를 보면서 그 미묘한 엇갈림과 투명한 사랑 소동에 킥킥거렸는데 사프디 형제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인 굿타임을 보면서는 계속 폭소했다. 좀 비뚤어지고 다소 신경질적인 유머 감각을 자극한다. 결코 건강한 웃음은 아니고 보통 때라면 웃어도 되나? 싶을 장면인데 빠른 속도감과 핸드 헬드 카메라의 박진감에 실려서인지 이상하게 마구 흔든 탄산음료의 거품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코니와 레이가 놀이공원의 야간 경비원을 때려눕히고 레이가 "깨어나도 기억 못할 걸"하며 경비 입에 페트병의 LSD를 콸콸 부어주는 장면, 나중에 깨어난 경비원이 경찰에게 놀이공원에 침입한 부랑자로 오인 받지만 약에 취해서 제대로 된 언어가 아닌 이..
나라야마 부시코 (1983) - 이 영화에 동의할 수 없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거나 이 영화 앞에 무릎을 꿇으며 경배를 하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겠구나. 일단 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폭력이 고도로 제련된다고 미가 될 수 있을까?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만들어낸 미적 환영을 영화가 마치 그것이 진짜 미인 것처럼 은근슬쩍 흐려버려도 되는 걸까? 영화는 100여 년 전 일본의 북단이라며 시대와 공간적 배경을 슬쩍 알리는 자막이 뜨고 흰 눈으로 덮인 산의 정경을 쭉 훑으며 시작한다. 이곳 사람들은 가난하고 굶주리며 척박한 산간에서 반은 짐승처럼 산다. 여자아이를 낳으면 소금 장수에게 팔고 남아라도 먹여 살릴 수 없는 형편이라면 죽인다. 남의 집 밭에 아기 시체를 버리고 극심한 식량 부족 때문에 먹을 걸 훔치는 자..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1991) - 나와 연결된, 나 아닌 나에 대한 감각 영화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위아래가 뒤집어진 저녁 풍경이 보이고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저 별이 나왔으니까 이제 크리스마스란다. 그리고 그 밑으로 안개가 보이지?" 카메라가 옆으로 흐르며 밤하늘이 더 넓게 보인다. 여자가 말한다. "저건 안개가 아니고 수없이 많은 별들이 함께 있어서 안개처럼 보이는 거야." 그리고 화면은 바뀌어서 이제 어머니의 품에 안겨 거꾸로 세상을 보고 있는 어린아이가 보인다. 맨 처음 나온 뒤집어진 세상은 이 아이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던 셈이다. 잠시 화면이 암전 되었다가 돋보기에 비친 커다란 갈색 눈과 초록색 잎사귀가 나온다. 새소리가 쉼 없이 들리고 여자가 말한다."첫 잎사귀가 나왔네. 이제 봄이니, 나무들은 모두 이런 잎사귀로 덮일 거야." 아..
매혹당한 사람들 (2017) - 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안녕! 스포 있음 예쁜 화면이 보고 싶어서 보러 간 영화였는데 그 점은 만족스러웠다. 촬영 감독은 필리페 르 소어드(Philippe Le Sourd).남부 특유의 스페인 이끼가 늘어진 울창한 나무.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해가 질 때의 붉은빛과 나무의 검은 실루엣, 장미 정원, 이오니아식 흰 기둥이 늘어선 대저택에 아름다운 여자들의 파스텔 톤 드레스와 진주 귀걸이, 섬세한 장신구, 레이스 커튼,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긴 금발 머리카락이 더해져 눈이 흡족했다. 가끔 화면이 너무 어둡지 않나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른거리는 촛불처럼 부드럽고 꿈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상이었다. 역시 예쁜 게 최고야. 유머를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보는 내내 입 밖으로 웃음이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꽤 있었다...
리틀 포레스트 (2018) - 김태리의 농촌 생활 브이로그? 스포 있음 리틀 포레스트는 엄청난 야망을 품고 있거나 다루고 있는 소재가 거대해서 보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거나 특별한 각오를 하고 보러 가야 하는 영화는 아니다. 제목 그대로 '작은 숲'처럼 편안하게 관객의 마음을 감싸주고 다정하게 맞아주는 영화였다. 관객의 멱살을 잡아채며 눈 크게 뜨고 보라고 고함을 지르는 영화가 아니라 보기 편했다. 소박하고 잔잔하지만 그렇다고 메시지가 없는 건 아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세상에 치이고, 허기지고, 탈진해서 쓰러진 청춘들에게 정갈하고 맛깔나는 밥상과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선사하며 다감하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영화의 주인공 혜원은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편의점 밥으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금방 올라갈 것이고 며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