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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킬링 디어 (2017) - 소년은 말했다. 이게 가장 정의에 가깝다고. 그런데 이게 진짜 정의일까? 영화 를 다 보고 나면 이런 물음이 생긴다. 그래서 마틴은 뭘 원했던 걸까? 스티븐의 의료 실수로 죽은 아버지의 복수? 영화는 친절하게도 그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스티븐의 잘못에 왜 우리(나-나의 딸-나의 아들)가 희생되어야 하냐는 애나의 질문에 소년은 말한다. "이게 가장 정의에 가까워요." 마틴은 정의라고 말했다. 그리고 복수와 정의는 서로 섞일 수도 있지만 똑같은 건 아니다. 복수와 정의는 분명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스티븐의 딸 킴이 (왜 나를 거부하는 거야?) 우리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그래?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마틴은 말한다. 화가 난 게 아니야. 그가 안쓰러운 쪽이지. 그리고 그는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한 킴에게 불쾌감을 표한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짜증나게. 마틴..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018) - 상상 속 '욕망의 field' 밀회에서 라크로스 경기장에서의 진짜 키스로 스포 있음 동생 2가 재미있다고 해서 할 일 없는 심심한 날에 봤다. 아시아계 여성이 주인공이며 짝사랑 전문인 주인공은 좋아했던 남자들에게 보내지 않을 러브 레터를 쓰는데 이 편지가 어떤 사건에 의해 남자들에게 배송된다는 기본 설정만 알고 시청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지 10분도 되기 전에 놀라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잠깐, 남주가 언니 전남친이야???? 이웃집에 살며 가족처럼 지내는 조시, 오랫동안 친구였던 조시, 언니 애인이었지만 이제 막 헤어진 조시가 이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인 줄 알고 내 안의 유교정신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아무리 미국 배경이라도 저긴 할리우드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하이틴 애들 얘기 아니야? 아무리 헤어졌다 해도 친언니 전남자친구가 남자 주인공이라고? 선생님, 이..
프랑스 영화처럼 (2016) 보고 이런저런 잡담 타임 투 리브, 맥주 파는 아가씨, 리메이닝 타임, 프랑스 영화처럼이라는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시간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는 게 네 편을 아우르는 접점이라고 한다. 네 편의 영화를 보다보면 이 말에 수긍이 간다. 타임 투 리브 타임 투 리브는 암에 걸린 어머니가 네 딸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앞으로 3일만 살다가 평화롭게 죽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이들이 앞으로 어떤 3일을 보내게 될 것인지 그러면서 서로의 관계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했는데 그냥 필터를 잔뜩 씌운 것처럼 화사한 색깔의 시골을 다섯이서 함께 걸을 뿐 영화는 '엄마가 죽기 전에 모녀가 함께 보내는 3일'을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인물들..
8월에 본 영화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2008)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손출연 : 리나 레안데르손(엘리), 카레 헤더브란트(오스칼) 촬영 : 호이트 반 호이테마 tv에서 해줘서 다시 봤다. 좀 볼만 하면 뚝뚝 끊어지면서 광고가 나오고 집중해서 영화를 보기에는 썩 좋지 않은 환경 때문인지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는 달랐다. 그래도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과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 감독의 조합, 리나와 카레라는 어린 배우들의 독특한 비주얼과 분위기는 여전히 좋았다. 책이 원작인 영화를 보면 보통 책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렛미인은 달랐다.영화를 본 후에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원작 소설 렛미인을 봤는데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알프레드손 감독과 반 호이테마 촬영 감독의..
소공녀 (2017) - 지금 이 세상에서 한 줌의 취향을 지킨다는 것 스포 있음 주인공 미소는 가사 도우미다. 일당은 많지 않고 집에 쌀이 떨어져서 친구에게 혹시 남는 쌀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새해가 되면서 방값이 오르고 담뱃값도 오른다. 방값은 5만원 더, 담배는 2천원 더. 돈이 부족해진 미소는 이제 지금의 삶에서 무언가를 빼야만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미소는 결코 놀지 않는다. 그녀는 남을 등쳐먹지 않고 착취하지도 않는 건강한 노동을 한다. 지금 이 시대 한국에서는 왜 노동하는 사람이 아주 아주 작고 소박한 삶, 영화의 영제이기도 한 '미미한 서식지(Microhabitat)'를 영위해 나가는 것도 불가능할까? 그러나 영화 속에서도,..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7 )-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홍상수의 신작 제목이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 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니, 너무 좋잖아. 월트 휘트먼의 시 'On the beach at night alone'에서 따온 제목이 주는 마법적인 감각과 정서에 반쯤 홀려 있다가 이어서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때는 그냥 두 손을 들었다. 감독이 연필로 직접 쓴 흰 손글씨와 긴 검은 머리가 흐트러진 김민희의 묘한 얼굴, 그 뒤에 비치는 푸르스름한 바다까지.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건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다음에는 슬그머니 이 영화를 피하고 싶어졌다. 영화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 당시 온갖 말이 나오던 감독과 주연 배우의 시끄러운 스캔들에서 멀어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알고 싶지 ..
애니 홀 (1977) - "우리에겐 계란이 필요하니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다소 왜소한 남자가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오래된 농담이 있어요. 두 할머니가 휴양지에 있죠. 한 사람이 말했어요. "여기 음식은 정말 끔찍해".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죠. "맞아, 그리고 양도 너무 적어". 이게 바로 내가 삶에 대해 느끼는 본질입니다. 외로움, 비참함, 고통, 불행으로 가득 차 있죠. 그리고 모든 게 너무 빨리 끝나요." 삶에 대한 부조리한 농담으로 시작한 영화는 40대 코미디언인 유대계 남자 앨비 싱어가 애니 홀과 헤어진 후 그녀와의 관계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내용이다. 신경증적인 유머와 프로이트적인 실언과 꿈(wife와 life, 앨비 '싱어'와 '가수' 앨비스 프레슬리), 두 사람이 함께했던 삶의 눈부신 순간, 다채로운 연출, 남녀..
M (1931) - 군중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태도 오락적 재미를 기대한 작품이 아니었는데 예상 밖으로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구조적으로 단단하게 잘 쌓아올린 영화라는 인상도 들었는데 실제로 프리츠 랑 감독은 건축을 공부했었다고 한다. 에서는 아이들만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나온다. 시민들은 공포와 마녀사냥의 집단 광기에 휩쓸리고 경찰은 살인마를 잡기 위해 도시 전체를 이 잡듯이 수색한다. 경찰들의 이런 물 샐 틈 없는 수사에 범죄조직들은 큰 타격을 입는다.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조직의 내로라하는 보스들이 모이고 자신들의 손으로 범인을 잡기로 결심한다. 어느 정도의 악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던 기존의 구조가 선을 넘는 존재로 인해 깨지고 다시 원래의 구조로 돌아가기 위해 악당들이 힘을 합치는 건 (2008)에서 기존의 공권력을 뛰어넘어 움직이는 초월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