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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신작 소설집-우리의 사람들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묘하게 다가온 건 8편의 단편에 녹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의 존재였다. 솔직히 산책을 하거나 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일 때나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거나 외국의 친구 집에 가거나 낯선 곳의 호텔에 묵거나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물거나 기타 등등의 이런저런 상황에서 나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은 늘 나로 가득 차 있고 나는 항상 나만 생각한다. 가끔 애인과 가족, 친구들을 생각해도 그때 내 머릿속의 그들은 나의 부속물이거나 나에게 딸린(?) 존재라 그들을 생각하는 건 결국 조금 다른 방면에서 나를 생각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의 사람들》의 인물들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사람들'을 생각하는..
7월에 읽은 책들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제니 전에 읽었을 때는 빽빽한 시들이 잘 안 읽혔는데 이번에 다시 잡으니까 전보다 더 집중해서 시를 따라갈 수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이 좋았는데 난 일단 '해변'이라는 장소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음. 해변, 하면 이미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어 버림. 쇼팽 노트 : 가장 순수한 음악 앙드레 지드 쇼팽 연습곡들 각각에 대한 지드의 해석(?)이 좋았다. 지드가 콕 집어 얘기하는 부분 악보가 실려 있어서 눈으로 따라가며 이해하기도 더 좋았고. 곡 들으면서 읽으니까 음악이 한층 더 와 닿는 느낌. 피아니스트들의 리스트적인 쇼팽, 기교적인 쇼팽 연주를 싫어한 지드. 낭만적이나 단순히 흥건한 낭만뿐인 게 아니라 그 낭만이 결국 고전의 견고한 세계로 돌아간다는 쇼팽. 지드의..
20대의 앙드레 지드가 적은 '나의 개성을 만들어준 인물들' 1894년, '메모 쪽지들' 나의 개성을 만들어준 인물들. 성서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파스칼 하이네 투르게네프 쇼펜하우어 미슐레 칼라일 플로베르 에드거 포 바흐 슈만 쇼팽 다빈치 렘브란트 뒤러 (알브레히트) 푸생 샤르댕 내가 가장 자주 접하는 사람들.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 읽고 잡생각 《그리스 로마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세네카, 키케로, 플루타르코스의 글들이 묶인 책으로 읽었다. 좀 두껍긴 한데 여러 권 손댈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제일 재미있었던 건 플루타르코스의 . 거사 전날의 갈등과 대화, 비장한 순간, 새로 등장한 사람들과 사건들, 예상치 못한 반전의 반전까지. 사람들의 대화와 행동이 살아 숨 쉬었다. 하지만 플루타르코스의 은 요즘 세상에 굳이 이런 글까지 번역해서 일반인 대상 책으로 나와야 하나 싶었다. 학술적 의미나 역사적 의미는 있겠지. 그런데 이걸 굳이 2020년의 독자들이 봐야 하나? 시대 감안해서 옛날 글들 빻은 거 잘 보는 편인데도 이건 정말 너무 역해서 이런 얘기라고 뭐 하나 예시로 옮기기도 싫을 정도다. 읽는 내내 요즘 세상의 어지간한 개저..
배반자의 글과 분리되지 못한 글-<아버지의 자리/어떤 여인>, 아니 에르노 옛날 홍상희 번역으로 읽었다. 다른 번역 제목은 , . 얼핏 봤는데 역자별로 뜻이 아예 다른 문장도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다르다. 작지만 한쪽에는 아예 없는 문장도 있고... 뭐가 더 원문에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홍상희 번역이 굉장히 직역이라는 건 알겠다. 아버지의 자리에서 아니 에르노는 서두에 '글을 쓴다는 것은 배반한 자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장 주네의 말을 명시해두는데 진짜 똑똑하다. 자기가 쓴 글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자리는 배반자의 글이다. 아비와 그의 자리, 그의 삶을 버리고 상위 계층으로 간 딸이 아비가 죽고 '나는 그를 배신했다'를, 그리고 이제 돌이킬 수 없음을 느끼고 쓰는 글. 돌아갈 수 없는 배반자가 내가 버린 것들을 글로 붙잡는 ..
미드소마 감독판 보고 주절주절 (2019), (감독판), 아리 애스터 플로렌스 퓨는 연기의 신이다. (2016)도 잘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 영화는 풍광, 의상, 배우, 모든 것이 그림 같은 작품 속의 한 구성 요소로 완벽하게 잘 녹아내린 느낌이었고 미드소마는 플퓨의 연기가 작품을 이끌고 나가는 느낌. 미드소마 보는 내내 플퓨의 표정, 느낌, 공기 등이 영화를 호흡하게 했고 관객이 피부 한 꺼풀 아래 술렁이는 대니의 신경 다발을 감각하게 하는 연기였다. 어떻게 저렇게 하는지 신기하고 놀라울 뿐. 제일 좋았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꽃으로 뒤덮여 인간을 넘어선 꽃의 덩어리가 되어 비척비척 걷는 메이퀸. 인간 '이상'의 존재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고 초월도 적절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딱 맞는 단어를 못 찾겠다. 아무튼..
교황의 고해는 왜 묵음 처리 될 수밖에 없었나-<두 교황> (2019),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유럽과 비유럽, 스메타나와 아바, 피아노와 축구, 전통과 변화. 출생, 취향, 취미, 생각, 성격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한 쪽이 다른 쪽에 굴복하고 흡수되는 형식이 아니라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다른 존재여도 우정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장벽이 아니라 다리). 거기에 믿음과 인간, 죄와 고해, 변화와 신의 목소리까지 많은 것을 건드리는데 작품에서 이 모든 것을 깊이 고민했다기보다는 적당히 매끈하게 상품으로 내놓았다. 실존 인물과 그들의 삶도 그냥 소재 빼먹기 된 것 같고.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가 신부들의 성폭행 고해하는 장면이 마음에 걸린다. 영화는 몇 마디 운만 띄우고 교황의 고해를 묵음 처리한다. 진정 그들을 다루려면 피할 수 없는 장면이었는데 감당 못할 것 같으니까 슬쩍..
사과하지 않는 '타락한 영화의 신'-<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같은 시대를 산 동료였던 슈페어와 리펜슈탈 책을 연달아 읽고 든 생각은 슈페어는 무척이나 영리하고 교활하며 리펜슈탈은 설령 거짓말을 할지라도 감정적으로는 솔직하게 느껴진다는 것. 슈페어는 지식인인 자신이 히틀러와 제3제국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던 것도 죄'라고 한다. 아예 맘에 없는 말 같지는 않지만 100퍼센트 진심이라는 생각도 안 든다. 무엇보다 너무나 정확하게 사람들이 나치의 장관에게서 듣고 싶은 걸 찔러주는 말이라 무서울 지경. 제3제국이 몰락한 뒤 난 몰랐고 그냥 히틀러가 시킨 대로 했으니 죄 없고 웅앵웅 변명하는 나치들 속에서 '몰랐던 것도 죄'라고 외치는 슈페어가 얼마나 기특해 보였을까. 예전 동지들 뉘른베르크에서 줄줄이 사형 선고 받을 때 20년 형으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부터 보통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