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 튜더 (2017) - 정원과 인테리어 구경하려고 본 영화 타샤 튜더에 대한 특별한 추억은 없다. 소공녀나 비밀의 화원 같은 책에서 가끔 삽화로 접한 적 있을 뿐. 나중에야 '아, 이게 그 사람 그림이었어?' 했던 게 내가 타샤 튜더에 가진 추억의 전부다. 그림을 그리고 정원을 가꾸며 옛날 생활 방식대로 살아가는 유명한 할머니라는 정도만 알았다. 굳이 먼 상영관까지 찾아가 영화 타샤 튜더를 본 건 한 편의 영화로서 기대가 된다기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정원과 타인의 취향이 묻어나오는 인테리어를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적으로는 큰 기대 없이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본 뒤에 살짝 한숨이 나오려 했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한 편의 다큐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104분짜리 영상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TV에서 해주는 KBS 특집 다큐에 뿌연.. 파이널 포트레이트 (2017) - 자코메티 때문에 본 영화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좋아한다. 그의 사생활 말고 작품을. 어느 할 일 없는 요정이 나타나 세계 예술품 중에 갖고 싶은 걸 딱 한 점 준다하면 나는 아마 자코메티의 조각을 고를 것 같다. 큰 거 말고 아주 작은 걸로.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작품을 들여놓으면 방안이 사원처럼 되어 버릴 것 같다고 했는데 이 말에 동의한다. 파이널 포트레이트가 나왔을 때 영화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잘해야 평작인 것 같았다. 평소라면 굳이 먼 상영관까지 찾아가 볼 영화는 아니라고 넘겼을 텐데 이건 자코메티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서 보고 왔다.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단순한 영화다. 자코메티의 모델이었던 제임스 로드가 쓴 책에 기반했다. 자코메티의 모델이 된 제임스가 몇 주 동안 예술.. 180924 (월) - 추석에는 등산이지 뱀! 킬링 디어 (2017) - 소년은 말했다. 이게 가장 정의에 가깝다고. 그런데 이게 진짜 정의일까? 영화 를 다 보고 나면 이런 물음이 생긴다. 그래서 마틴은 뭘 원했던 걸까? 스티븐의 의료 실수로 죽은 아버지의 복수? 영화는 친절하게도 그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스티븐의 잘못에 왜 우리(나-나의 딸-나의 아들)가 희생되어야 하냐는 애나의 질문에 소년은 말한다. "이게 가장 정의에 가까워요." 마틴은 정의라고 말했다. 그리고 복수와 정의는 서로 섞일 수도 있지만 똑같은 건 아니다. 복수와 정의는 분명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스티븐의 딸 킴이 (왜 나를 거부하는 거야?) 우리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그래?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마틴은 말한다. 화가 난 게 아니야. 그가 안쓰러운 쪽이지. 그리고 그는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한 킴에게 불쾌감을 표한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짜증나게. 마틴.. 프레디 머큐리 인터뷰집 10월 말에 개봉한다는 영화 를 기다리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인터뷰 모음집을 읽었다. 한국어 책 제목은 , 원제는 . 20년 동안 프레디가 한 인터뷰를 주제별로 나눠 편집한 책인데 장점은 제3자가 퀸이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이런 저런 소설을 써 놓은 게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 본인이 한 말이라는 것이다. 단점은 인터뷰를 통째로 차곡차곡 실어놓은 게 아니라 주제에 따라 각기 다른 시기의 인터뷰들을 토막토막 잘라 묶어놔서 읽다보면 이런 토막글 형식 말고 인터뷰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대충 어떤 시기였는지 짐작은 가지만 구체적으로 몇 년도에 한 인터뷰라는 날짜가 없어서 불편하다. 어쨌든 프레디 머큐리가 20년 동안 한 인터뷰를 쭉 읽는 건 재미있었다.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든 생..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018) - 상상 속 '욕망의 field' 밀회에서 라크로스 경기장에서의 진짜 키스로 스포 있음 동생 2가 재미있다고 해서 할 일 없는 심심한 날에 봤다. 아시아계 여성이 주인공이며 짝사랑 전문인 주인공은 좋아했던 남자들에게 보내지 않을 러브 레터를 쓰는데 이 편지가 어떤 사건에 의해 남자들에게 배송된다는 기본 설정만 알고 시청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지 10분도 되기 전에 놀라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잠깐, 남주가 언니 전남친이야???? 이웃집에 살며 가족처럼 지내는 조시, 오랫동안 친구였던 조시, 언니 애인이었지만 이제 막 헤어진 조시가 이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인 줄 알고 내 안의 유교정신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아무리 미국 배경이라도 저긴 할리우드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하이틴 애들 얘기 아니야? 아무리 헤어졌다 해도 친언니 전남자친구가 남자 주인공이라고? 선생님, 이.. Radiohead - True Love Waits / 이상하게 서글픈 노래 True Love Waits는 들으면 뭔가 먹먹하다. 라헤의 다른 노래와 비교하면 막 대놓고 우울한 노래는 아닌데 왜 이렇게 서글픈지 이유도 모르면서 그냥 속절없이 서글퍼진다. 이 노래가 갖고 있는 감정적인 힘에 저항할 수 없다. 초기 라이브 버전과 2016년 9번째 앨범 A Moon Shaped Pool에 실린 스튜디오 버전이 있는데 스튜디오 버전은 좀 더 느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 피아노 소리가 흐른다. 듣고 있으면 예전 라이브 버전보다 더 명상적이고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부르는 회고적인 성격을 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어느 평론가가 스튜디오 버전의 True Love Waits에서는 'Don't leave'가 문자 그대로 떠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마치 작별 인사처럼 들린다고 한.. 책그림책 - 시적인 그림과 묘한 이야기들 책그림책은 화가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을 출판사가 여러 나라의 작가 46명에게 한 장씩 보내고 작가들이 자신이 받은 그림에 영감을 받아 쓴 글을 모아 낸 책이다.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이 화려하다. 밀란 쿤데라, 미셸 투르니에, 아모스 오즈, 오르한 파묵, 수잔 손탁, 존 버거, 헤르타 뮐러, 밀로라드 파비치 등등. 원래는 다른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하도 집중이 되지 않아 도피성 독서로 책그림책을 펼쳤다. 한 편의 이야기들이 짧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리저리 치이는 일상 속에서 잠시 짬을 내 책그림책을 펼치면 신비로운 그림과 묘한 분위기의 글을 통해 잠시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작가가 어떤 그림을 받고 어떤 글을 썼는지 보는 즐거움도 있으며 마음에 드는.. 180908 (토) - 알라딘 중고서점, 지하상가 단추가게, 첫 헌혈, 그림 첫모임 아침에 너무 추웠다. 알람 끄고 이불 속에 웅크려 한참 누워 있었다. 도저히 이불 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났다.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들은 오늘의 첫 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B플랫 장조 D.960 3악장, 4악장.그 다음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9번 F장조 KV.459 3악장. 겉흙이 말라서 식물들 욕조에 놓고 샤워기로 물 줬다. 확실히 날씨가 건조해진 거 같다. 피부도 바디로션, 핸드크림 안 바르면 불편하다. 알라딘 중고서점 가서 책 12권 팔고 22400원 받았다. 집에 책이 너무 많다. 안 보는 책 틈틈이 가져다 팔아야지. 지하상가 단추가게 가서 옷에 달을 단추 샀다. 처음 간 가게였는데 단추 종류는 많았지만 대부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어르신들 대상인지 좀 반짝반짝 현란했다. .. Daft Punk - Giorgio By Moroder / 알바하면서 듣다가 눈물 날 뻔한 노래 Daft Punk - Giorgio By Moroder 평일엔 학교를 가고 주말에는 알바를 했다. 아침 10시까지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일하는 알바였다. 손님 있으면 밤 11시, 12시까지도 일했다. 알바가 끝나면 캄캄한 밤거리를 40분간 걸어서 집에 돌아왔고 씻고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면 다시 40분간 걸어서 출근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돈 계산하고 루틴대로 움직이면서 기계처럼 할 일만 하던 시간이었다. 그때 알바하면서 내내 음악을 틀어놨는데 그때 내 상태가 음악을 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대부분의 음악은 그냥 생활소음처럼 공간만 채우다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어떤 음악은 마비된 정신을 깨우며, 관성대로 생각 없이 움직이는 일상을 뚫고 화살처럼 꽂혔다. 다프트 펑.. 하루 만에 쑥 자란 귀리 (캣그라스) 자연 속의 고양이는 귀리, 보리, 밀, 호밀 등의 일명 '캣그라스'라 불리는 식물을 먹어 섬유질을 보충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루밍하다 삼킨 털이 헤어볼로 뭉치기 전에 변으로 쉽게 내보낸다고 한다. 집고양이를 위한 캣그라스 재배 세트를 팔아서 귀리를 키워보기로 했다. 9월 2일 일요일에 심어서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봤다. 4일 밤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싹 하나 안 돋고 흙 밖에 없었는데 5일인 오늘 아침 확인해 보니 이만큼 자라있었다! 밤새 엄청난 폭풍 성장. 별 탈 없이 이대로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 반면에 고양이용이 아니라 그냥 취미로 기르는 방울토마토는 7월 18일에 심었는데 7월 28일에 싹이 나서 지금까지 이 상황이다. 좀 더 쑥쑥 자랐으면 좋겠는데. 프랑스 영화처럼 (2016) 보고 이런저런 잡담 타임 투 리브, 맥주 파는 아가씨, 리메이닝 타임, 프랑스 영화처럼이라는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시간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는 게 네 편을 아우르는 접점이라고 한다. 네 편의 영화를 보다보면 이 말에 수긍이 간다. 타임 투 리브 타임 투 리브는 암에 걸린 어머니가 네 딸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앞으로 3일만 살다가 평화롭게 죽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이들이 앞으로 어떤 3일을 보내게 될 것인지 그러면서 서로의 관계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했는데 그냥 필터를 잔뜩 씌운 것처럼 화사한 색깔의 시골을 다섯이서 함께 걸을 뿐 영화는 '엄마가 죽기 전에 모녀가 함께 보내는 3일'을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인물들.. 이전 1 ···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