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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책그림책 - 시적인 그림과 묘한 이야기들 책그림책은 화가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을 출판사가 여러 나라의 작가 46명에게 한 장씩 보내고 작가들이 자신이 받은 그림에 영감을 받아 쓴 글을 모아 낸 책이다.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이 화려하다. 밀란 쿤데라, 미셸 투르니에, 아모스 오즈, 오르한 파묵, 수잔 손탁, 존 버거, 헤르타 뮐러, 밀로라드 파비치 등등. 원래는 다른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하도 집중이 되지 않아 도피성 독서로 책그림책을 펼쳤다. 한 편의 이야기들이 짧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리저리 치이는 일상 속에서 잠시 짬을 내 책그림책을 펼치면 신비로운 그림과 묘한 분위기의 글을 통해 잠시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작가가 어떤 그림을 받고 어떤 글을 썼는지 보는 즐거움도 있으며 마음에 드는..
8월에 읽은 책 사토장이의 딸 조이스 캐롤 오츠 박현주 옮김아고라 엄마가 먼저 읽고 대단한 책이라 추천해줘서 집어 들었다. 사실 엄마랑은 영화나 책 취향이 잘 맞지 않는데 조이스 캐롤 오츠는 전에 엽편 하나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어 바로 읽었다. 은 어딘가 로맨스 소설 같았다. 다 읽고 나니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을 엽편 말고 장편 도 읽었다는 게 생각났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 독일인 가정의 딸 레베카가 폭력적인 아버지, 난폭한 남편 등의 야만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과 빈민가의 여자 아이들이 똘똘 뭉쳐 여성 갱단을 조직하고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둘 다 장르적 재미가 강렬했다. 시대적인 배경과 다루는 내용은 만만치 않은데 서사의 재미가 뛰어나 읽을 때 훌훌 읽힌다. 그러나 엄마처럼 굉..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은 영국의 수녀이자 미술 사학자인 웬디 베켓이 유럽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미술품에 대해 얘기하는 BBC TV 프로그램
불의 강, 오정희 - 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숨이 막힌다. 오정희의 첫 번째 소설집 불의 강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서서히 목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면서 왠지 모르게 침 한 번 크게 삼키는 것도 주저하게 만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서사가 엄청나게 스펙터클하다거나 뭔가 스릴 넘치는 장르적인 리듬이 있는 건 아니다. 불의 강에 실린 열두 편의 단편은 언뜻 보면 평화롭고 나른할 정도로 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장면들을 예민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샅샅이 속살을 파헤쳐 생살에 바늘을 꽂는 것 같은 문장으로 백지에 새긴다. 읽다 보면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야릇한 기운에 둘러싸이는 것 같다. 열두 편의 단편을 읽으며 문득 깨달은 것은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부분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었다는 것이었다. 불의 강의 부부..
[번역 비교] 체호프 단편선 펭귄북스/열린책들 펭귄북스에서 낸 체호프 단편선 《사랑에 관하여》(안지영 역)와 열린책들에서 낸 체호프 단편선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오종우 역)은 단편 두 편이 겹친다. 와 이 겹치는데 펭귄북스, 열린책들 순으로 몇 문장 뽑아 비교해 봤다. 그는 울며 떨고 있는 이 소녀의 신경이 반은 병들고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신경줄에, 마치 철이 자석에게 이끌리듯 응답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결코 건강하고 체격 좋고 뺨이 붉은 여인을 사랑할 수 없겠지만, 창백하고 약하고 불행한 타냐는 그의 맘에 들었다. - 펭귄북스, 안지영 번역 그는 이 훌쩍이며 떨고 있는 처녀의 신경이 자석의 철심처럼 자신의 신경을 매우 아프게 자극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건강하고 강인하며 뺨이 붉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창백하고 가냘프며 행복하지 ..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 '너 자신을 알라'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미셸 투르니에에게는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계절 따라 변하는 정원의 모습, 친구들과의 일화 등을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외면일기》는 그의 이런 토막글을 모아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로 나눠놓은 책이다. 만약 모바일 화면으로 본다면 한 화면 안에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담길 만큼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덕지덕지 물감 칠이 된 유화보다는 간소한 스케치에 가깝다. 연결되지 않는 파편들이 쭉 나열되어 있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때로는 아슬아슬하기도 한 미셸 투르니에의 유머 감각이 곳곳에서 반짝이고 그의 다른 작품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창작의 씨앗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읽다가 미소를 짓게 되기도 하고 와, 이런 구절이! 감탄하며 밑줄을 그을 때도 적지 않게 있다. 그러나..
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 음악과 함께 흘러간 세월 Ray Charles - Come Rain or Come Shine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정말 딱 맞다. 말 그대로 음악과 더 이상 젊지 않은, 어느 순간 '내 인생이 겨우 이런 것인가?'라는 자기 내부에서 떠오르는 물음과 마주치는 시기, 자기 앞에 이제 기나긴 삶의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 황혼기의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다고 《녹턴》의 인물들이 그저 체념한 채 다가오는 밤을 멍하니 바라보는 건 아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인생을 다시 한 번 붙잡아 보려 한다. 그로 인한 행동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성공하지 못하는 건 '실패자형 추남'인 외모 때문이라며 아내의 남자친구가 준 돈으로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타르코프스키의 Martyrolog - 위대한 영화 감독의 내밀한 일기 국내 번역판 제목은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남긴 방대한 양의 일기에서 유족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과 영화 작업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얘기 등을 제외하고 추린 일기 모음집이다. 1970년 4월 30일 도스토옙스키를 영화화하려는 단상에서부터 시작해서 1986년 12월 15일 폐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영화화하고 싶었던 햄릿을 읊조리며 끝난다. 1970년에서 1986년까지의 일기이기 때문에 이 사이 그가 만든 솔라리스(1972), 거울(1975), 스토커(1979), 노스탤지아(1983), 희생(1986)의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헤르만 헤세나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토마스 만 등 작가들에 대한 생각과 독후감도 있으며 잉마르 베리만, 로베르 브레송, 미켈란젤로 안토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