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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홀 (1977) - "우리에겐 계란이 필요하니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다소 왜소한 남자가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오래된 농담이 있어요. 두 할머니가 휴양지에 있죠. 한 사람이 말했어요. "여기 음식은 정말 끔찍해".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죠. "맞아, 그리고 양도 너무 적어". 이게 바로 내가 삶에 대해 느끼는 본질입니다. 외로움, 비참함, 고통, 불행으로 가득 차 있죠. 그리고 모든 게 너무 빨리 끝나요." 삶에 대한 부조리한 농담으로 시작한 영화는 40대 코미디언인 유대계 남자 앨비 싱어가 애니 홀과 헤어진 후 그녀와의 관계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내용이다. 신경증적인 유머와 프로이트적인 실언과 꿈(wife와 life, 앨비 '싱어'와 '가수' 앨비스 프레슬리), 두 사람이 함께했던 삶의 눈부신 순간, 다채로운 연출, 남녀..
M (1931) - 군중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태도 오락적 재미를 기대한 작품이 아니었는데 예상 밖으로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구조적으로 단단하게 잘 쌓아올린 영화라는 인상도 들었는데 실제로 프리츠 랑 감독은 건축을 공부했었다고 한다. 에서는 아이들만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나온다. 시민들은 공포와 마녀사냥의 집단 광기에 휩쓸리고 경찰은 살인마를 잡기 위해 도시 전체를 이 잡듯이 수색한다. 경찰들의 이런 물 샐 틈 없는 수사에 범죄조직들은 큰 타격을 입는다.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조직의 내로라하는 보스들이 모이고 자신들의 손으로 범인을 잡기로 결심한다. 어느 정도의 악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던 기존의 구조가 선을 넘는 존재로 인해 깨지고 다시 원래의 구조로 돌아가기 위해 악당들이 힘을 합치는 건 (2008)에서 기존의 공권력을 뛰어넘어 움직이는 초월적 ..
셰이프 오브 워터 (2017) - 신은 당신 같은 모습이 아니야 스포 있음 이사 준비로 바빠서 날 새고 조조로 본 영화였다. 피곤한 몸으로 극장 시트에 앉았는데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오프닝이 나오는 순간 '이 영화,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이 너무 게으르고, 너무 쉽게 정리해버리는 말이고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낡고 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에는 이 말이 참 잘 어울린다. '어른'이라는 것에 방점을 둔 표현으로서도, '동화'라는 말에 방점을 둔 표현으로서도. 영화는 마법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며 물에 잠긴 방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방에는 가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잠든 여인도 물속에 떠있다. 마치 마법에 걸려 잠든 공주님처럼. 그리고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이미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는 자의..
굿타임 (2017) 보고 이런저런 잡생각 1. 올해 본 영화중에 제일 웃기네 1월에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1998)를 보면서 그 미묘한 엇갈림과 투명한 사랑 소동에 킥킥거렸는데 사프디 형제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인 굿타임을 보면서는 계속 폭소했다. 좀 비뚤어지고 다소 신경질적인 유머 감각을 자극한다. 결코 건강한 웃음은 아니고 보통 때라면 웃어도 되나? 싶을 장면인데 빠른 속도감과 핸드 헬드 카메라의 박진감에 실려서인지 이상하게 마구 흔든 탄산음료의 거품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코니와 레이가 놀이공원의 야간 경비원을 때려눕히고 레이가 "깨어나도 기억 못할 걸"하며 경비 입에 페트병의 LSD를 콸콸 부어주는 장면, 나중에 깨어난 경비원이 경찰에게 놀이공원에 침입한 부랑자로 오인 받지만 약에 취해서 제대로 된 언어가 아닌 이..
샬롯 갱스부르가 좋아하는 음악 샬롯 갱스부르의 플레이 리스트 Time of the Assassins - Charlotte Gainsbourg Radiohead - Paranoid Android Lou Reed - Perfect Day Bob Dylan - Sarah Cab Calloway - Minnie the Moocher Serge Gainsbourg - Ballade de melody nelson Gertrud Huber - The Harry Lime Theme Babyshambles - Back from the dead Elizabeth Cotten - Shake Sugaree T. Rex - Cosmic dancer 출처 : https://www.wired.com/2010/04/playlist-charlotte-gainsbo..
처음 본 라리가 경기 - 레알 마드리드 : 헤타페 저번에 본 슈퍼컵과는 달랐다. 그때 레알 마드리드랑 AT 마드리드 경기는 재밌었는데 이 경기는 솔직히 재미없었다. 헤타페는 그냥 대놓고 몸뚱이를 갖다 박더라. 무슨 범퍼카인 줄. 레알 선수가 공 가지고 가고 있는데 뒤에서 그냥 뛰어가서 냅다 몸통 박치기하는 거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 손으로 얼굴을 밀어버리거나 등짝 밀어버리고, 그냥 막 발 높이 들어서 차고 그러니까 선수들이 조금 뛰다가 다 픽픽 쓰러지면서 흐름 끊기고 너무 노잼... 전반전에 옐로카드 세 장 나오고 후반전에 다섯 장 나왔다. 한 장은 레알의 마르셀루가 받고 나머지는 다 헤타페 선수들. 해설들은 저 심판이 관대하다고 그러던데 관대하지 않은 심판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러시아 월드컵 이후로 축구에 조금씩 관심 생..
축알못 2018 슈퍼컵 본 후기 - 레알 마드리드 : AT 마드리드 축구와 별 인연 없이 살고 있었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본 축구가 너무 재미있었다. 조별리그 한독전은 말할 것도 없고 16강전 벨기에 일본에서 두 골로 지고 있던 벨기에가 2골 따라잡고 막판에 쐐기 골 넣은 경기도 재밌었다. 8강에서 프랑스 골키퍼 로리스가 잠자리 먹을 뻔(?)한 것도 신기했고 이때 지고 있던 우루과이 히메네스가 경기 중에 울먹거리는 건 찡했고... 네이마르 푸드득거리며 데굴데굴 구르는 것도 재밌었고 (처음엔 아픈 줄 알았는데 연기하는 거라 해서 웃겼다) 음바페의 연이은 인성질은 너무 짜증났다. 크로아티아 선수들 갈수록 피골 상접해가며 투혼 발휘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마지막 프랑스와의 결승전도 흥미진진했다. 메시, 호날두 같은 유명 선수들 이름만 조금 들어봤고 룰도 모르는데 경기 ..
나라야마 부시코 (1983) - 이 영화에 동의할 수 없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거나 이 영화 앞에 무릎을 꿇으며 경배를 하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겠구나. 일단 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폭력이 고도로 제련된다고 미가 될 수 있을까?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만들어낸 미적 환영을 영화가 마치 그것이 진짜 미인 것처럼 은근슬쩍 흐려버려도 되는 걸까? 영화는 100여 년 전 일본의 북단이라며 시대와 공간적 배경을 슬쩍 알리는 자막이 뜨고 흰 눈으로 덮인 산의 정경을 쭉 훑으며 시작한다. 이곳 사람들은 가난하고 굶주리며 척박한 산간에서 반은 짐승처럼 산다. 여자아이를 낳으면 소금 장수에게 팔고 남아라도 먹여 살릴 수 없는 형편이라면 죽인다. 남의 집 밭에 아기 시체를 버리고 극심한 식량 부족 때문에 먹을 걸 훔치는 자..